‘장래 유가를 예측해달라’는 질문은 ‘우문(愚問)’이다. 자본시장에서 주가를 정확하게 전망할 수 있다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주가 보다 유가 예측이 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개입하는 것이 불법이니 경제 상황이나 기업 실적 등에 기초한 비교적 투명한 접근과 예상을 할 수 있는 것이 주식이다. 하지만 유가는 원유 생산국들이 카르텔을 만들어 수급과 가격을 조절할 수 있으니 인위적인 개입이 끼어드는 만큼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국제금융센터를 비롯해 일부 전문기관에서는 내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위협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다른 전망은 오히려 내년 평균 유가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인 EIA(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가 최근 제시한 전망이 대표적인데 이 예측대로 들어맞는다면 내년 국제유가가 올해 유가보다 낮게 유지될 수도 있다. 어떤 전망이 맞을지는 알 수 없다. 오직 결과가 말해줄 뿐이다. 다만 모든 시나리오에 관심을 기울이고 대비해야 하는 이유는 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원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유가는 어떤 재료들로 움직이며 세계는 내년 원유 시장과 유가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올해 평균 유가 전망, 매달 바꾼 EIA
EIA는 ‘매월 단기 에너지 전망 보고서’를 발표한다. ‘SHORT-TERM ENERGY OUTLOOK’으로 이름 붙여진 보고서를 통해 국제유가 전망을 발표하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자신들이 그 전 달 예측 발표한 미래 시점의 유가를 기초로 최근의 국제 에너지 환경 변화 요인 등을 감안한 수정된 원유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10월에 예측한 올해 평균 국제유가는 배럴당 OO달러였는데 한 달 사이 벌어진 변수들을 감안하니 OO달러로 오를 것 같더라’는 식의 분석 자료를 내놓고 있다. 가장 최근 발표된 자료가 11월 단기 에너지 전망 보고서이니 올해 들어 EIA는 올해 평균 국제유가 전망치를 11번 수정했다. 사이사이 국제유가 전망을 바꿀만한 다양한 변수들이 생겼던 것인데 주로 인상 요인이 많았다. 올해 평균 국제유가 전망 중 3번을 제외한 9번이 그 전 달 예측치보다 상향 수정됐다. 가장 최근인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WTI 평균 유가는 1배럴에 66.79달러로 예상된다. 지난 1월 발표한 전망치보다 WTI는 1배럴에 11.42달러, 브렌트유는 13.38달러가 상향 전망됐다.
당연할 것 같은 예측 빗나가기도
유가 변동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석유 수급 이슈부터 지정학적 리스크, 국제 금융 추세 등 국제유가 흐름을 좌우하는 다양한 변수들이 반영된다. 당연히 그러려니 했던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가기도 한다.
지난 11월 5일을 기해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이란을 대상으로 경제 제재를 재개했다.이번 제재로 이란산 원유 수출이 막혀 국제 원유 공급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되면서 유가 인상 요인이 발생했는데 오히려 유가는 떨어졌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 8개국을 대상으로 180일간 이란산 원유 수입을 예외적으로 허용하자 유가는 하락했다. 이란 경제 제재 리스크는 본격 실행되기 이전에 이미 유가에 반영돼 상승을 주도했고 정작 제재가 본격화된 시점에서는 이란산 원유 수입국에 대한 제한적인 거래 허용 이슈가 유가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미국발 이슈, 유가 결정하는 중요한 재료
국제유가를 전망하는 재료 중 중요한 데이터는 미국발 이슈들이다. 비전통원유인 셰일원유 생산 기술이 진화되면서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생산량을 초월해 국제 수급을 좌우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EIA에 따르면 지난 10월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은 하루 1,140만 배럴로 사우디의 1,070만 배럴을 앞지른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원유 생산량이 내년에는 하루 1,200만 배럴을 넘어서는 것도 유력하다는 전망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셰일원유 시추기 수가 늘고 줄고 하는 것은 국제유가 예측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미국의 전략비축유 재고량도 유가 변동성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얼마나 많은 원유를 생산하는지 또 재고 물량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만으로도 유가가 오르내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심지어 달러화 가치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조정 여부도 위험자산으로 인식되는 석유 선물 투자에 영향을 미쳐 유가를 좌우한다.
EIA에 따르면 지난 10월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은 하루 1,140만 배럴로 사우디의 1,070만 배럴을 앞지른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원유 생산량이 내년에는 하루 1,200만 배럴을 넘어서는 것도 유력하다는 전망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셰일원유 시추기 수가 늘고 줄고 하는 것은 국제유가 예측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미국의 전략비축유 재고량도 유가 변동성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얼마나 많은 원유를 생산하는지 또 재고 물량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만으로도 유가가 오르내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심지어 달러화 가치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조정 여부도 위험자산으로 인식되는 석유 선물 투자에 영향을 미쳐 유가를 좌우한다.
생산량 통한 유가 통제, 가능하지만 가능하지 않을 수도
지리적인 위치가 정치와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地政學)적 요인이 가장 민감하게 작용하는 시장 중 하나가 원유 시장이다. 주요 원유 산지가 몰려 있는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로 불린다. 미국의 탄도미사일 개발 중단 요구 등을 거부하면서 경제 제재에 묶여 원유 수출이 금지된 이란, 리비아 군벌 세력 간 충돌, IS의 일부 유전 시설 장악, 예맨 내전과 사우디의 개입 사태 등은 올해 벌어졌고 현재도 진행 중인 사건들이다. 끊이지 않는 중동 전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고스란히 국제유가 변동성을 자극하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 중인 남미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 미국과의 갈등도 유가를 결정짓는 중요 변수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원유 자원 부국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에너지 수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후진적인 교역 구조로 되어 있다. 주요 석유 수출국들이 수급과 가격을 조절하기 위해 카르텔 기구인 OPEC을 결성한 것도 원유 교역을 통해 안정적인 국가 재정 수입을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OPEC 회원국들의 상반된 이해관계나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야기되는 작은 충격에도 원유 수급과 가격은 소란스럽게 요동치기도 한다. 카르텔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하고 유가를 통제할 힘을 가졌지만 정작 그 힘을 다스릴 수 없는 다양한 상황들이 전개되고 유가 변동성 확대로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시장이 바로 원유 시장이다.
줄곧 상향 전망되던 내년 유가, 내림세 반전
다양한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돌발 요소들이 넘쳐 나는 국제 원유 시장이니 유가가 어떻게 변동되든 이상할 일은 아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가 변동이 세계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만큼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 EIA의 전망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EIA가 바라보는 내년 유가 전망이 최근 하향 추세로 반전되는 의미심장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올해 들어 EIA가 제시한 내년의 WTI 평균 가격은 매월 상승 조정되어 왔다. 1월에 내놓은 전망에서는 내년 WTI 가격이 배럴당 57달러 선을 유지할 것으로 점쳤는데 10월 전망 자료에는 69.56달러로 치솟았다. 연초 유가 전망 당시의 환경에 비해 다양한 상승 요인들이 발생하면서 상향 조정해 온 것인데 11월 들어서면서 상황은 반전되고 있다. EIA가 제시한 내년 WTI 가격은 10월 전망 때보다 배럴당 4.71달러나 하향 조정됐다. 풀어 설명하면 EIA는 10월 전망에서 내년 WTI 가격을 1배럴에 69.56달러로 예측했는데 불과 한 달만에 64.85달러로 낮춰 잡은 것이다.
올해 들어 EIA가 제시한 내년의 WTI 평균 가격은 매월 상승 조정되어 왔다. 1월에 내놓은 전망에서는 내년 WTI 가격이 배럴당 57달러 선을 유지할 것으로 점쳤는데 10월 전망 자료에는 69.56달러로 치솟았다. 연초 유가 전망 당시의 환경에 비해 다양한 상승 요인들이 발생하면서 상향 조정해 온 것인데 11월 들어서면서 상황은 반전되고 있다. EIA가 제시한 내년 WTI 가격은 10월 전망 때보다 배럴당 4.71달러나 하향 조정됐다. 풀어 설명하면 EIA는 10월 전망에서 내년 WTI 가격을 1배럴에 69.56달러로 예측했는데 불과 한 달만에 64.85달러로 낮춰 잡은 것이다.
공급 과잉 심리 확산에 감산하려는 산유국
내년 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낙관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0월 초에 제시된 자료이지만 국제금융센터(Korea Center for International Finance)는 내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을 하였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인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의 파티 비롤(Fatih Birol) 사무총장은 향후 석유 시장이 공급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산유량이 하루 100만 배럴 이하로 떨어지고 미국 경제 제재 여파로 이란 석유수출량이 줄어들며 앙골라와 리비아, 나이지리아 등의 OPEC 회원국에서 공급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이 셰일원유 생산량을 늘린다고 해도 세계 원유 공급과 수요 사이의 간격을 채울 수 없다는 점도 언급했다. OPEC이 내년 유가 부양을 위해 생산량 감축에 합의하고 실행에 옮기는 상황도 상정해볼 수 있다. 실제로 내년 석유 수요 증가세가 둔화하고 공급이 초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과 관련해 OPEC 주요 관계자들은 내년 석유 생산 정책을 감산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는 오는 12월부터 하루 50만 배럴 규모의 원유 감산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감산 배경에 대해 사우디 알 팔리 장관은 ‘시장 심리가 공급 부족을 걱정하는 데서 과잉 공급을 우려하는 쪽으로 옮겨있다’고 설명했다.
고유가, 물가 상승 및 수출 경쟁력 약화 등 부정적 효과 커
원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고유가 상황은 국가 경제에 절대 유리하지 않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때 수입물가는 2개월 후 최대 6.5%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생산자물가는 1개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5개월 후에는 0.62%까지 오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미쳐 2개월 이후부터 상승해 5개월 후 최대 0.15%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가 상승은 소비자물가 중 석유, 공업제품, 주택·수도·전기 및 연료, 교통 부문의 물가 분야에서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생활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생활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 특성상 고유가 상황에서 비롯되는 각종 수출입 재화 가격의 상승은 국가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높다. 문제는 국제유가 변동이라는 대외적 변수에 우리나라가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가 유류세 15%를 인하하면서까지 내수 기름값 잡기에 나섰지만, 유가가 상승한다면 세금 인하 효과는 금세 상쇄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해외 자원 개발을 확대해 자주개발률을 높이고 동해가스전을 이을 국내 대륙붕 자원 개발을 지속하며 똑같은 에너지를 소비하고도 더 많이 움직일 수 있는 효율 관리 노력이 절실하다.
김신 - 에너지플랫폼뉴스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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