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사우디의 ‘유가’ 힘겨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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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우디는 고집스럽게 감산을 유지하는 것일까? 미국의 힘과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미국의 의사에 반하는 감산은 사우디에게도 엄청난 부담이다. 유가가 높을 때는 많이 팔면 이익이다. 그런데 사우디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일부러 생산을 줄이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경제적 이익보다 더 중요한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사우디의 '유가' 힘겨루기

유가와 물가의 관계

유가가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미 연방 정부 통계에 따르면 에너지는 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 이하 CPI)를 구성하는 상품 중 7.3%의 비중을 차지한다(2021년 기준).*[efn_note]※ Investopedia, “What is relationship between oil prices and inflation”, 2023.8.29. [/efn_note] 휘발유, 전기료, 난방비 등의 에너지 관련 물가가 전체 소비자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3%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 비율만 가지고는 에너지 비용의 영향을 측정할 수 없다. 모든 상품의 제조 과정에서 에너지 비용은 연료비, 운송료 등의 형태로 원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석유는 각종 석유화학제품의 원재료이므로 합성수지와 합성섬유를 이용한 가전, 의류 등의 가격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2018년에 작성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efn_note]※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워싱턴에 있는 연방준비이사회와 12개의 지역별 연방준비은행으로 구성되는데,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지역별 연방준비은행 중 하나이다. [/efn_note] 보고서에 따르면 유가가 10% 오르면 미국의 CPI는 2.7% 오르는 정도의 상관관계를 보인다.*[efn_note]※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Does oil drive inflaion”, 2018.11.26. [/efn_note] 이러한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의 동일성이다. 2000년 이후 유가와 CPI 변동률 간 그래프를 포개어 놓고 보면 거의 유사한 방향성이 보임을 알 수 있다. 변동 폭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그 방향성은 매우 유사하다(그림 1 참조). 다시 말해 유가가 오르면 반드시 물가도 올랐고, 유가가 떨어지면 물가도 떨어졌다. 따라서 유가를 잡지 못하면 물가를 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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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는 외부 충격으로 움직이는 폭이 매우 크기 때문에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상품과 계절적 요인이 강한 식품류를 제외하고 별도 물가 지수를 산정하기도 한다. 이를 근원물가지수(Core inflation)라고 하는데, 이렇게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별도 물가 지수를 산출한다는 것도 에너지 가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유가가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면서 그 변동 폭과 방향성에 촉각을 세우게 된다. 유가 인상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유류세 등을 인하하기도 하고 가격을 일정 부문 통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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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를 잡기 위한 미국의 분투

미국 바이든 정부는 올해 하반기 나타난 유가 상승을 상당한 정치적 위협으로 느낀다.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정부는 대중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지난 9월 22일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efn_note]※ 연방준비제도(聯邦準備制度, 영어: Federal Reserve System 페더럴 리저브 시스템), 약칭 연준(聯準, Fed 페드)은 미국의 중앙은행이다. 1913년 12월 23일 미 의회를 통과한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에 의해 설립되었다.[/efn_note] 제롬 파월 의장이 6월 이후 동결했던 기준금리 인상을 재추진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물가 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 이후에도 유가가 잡히지 않자, 10월 2일 파월 의장은 재차 고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해야 한다는 매파적 발언을 반복했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상반기에도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기며 인플레이션을 심화시켰다. 높은 물가 때문에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은 임박한 중간 선거에서 매우 불리한 입장에 처했다. 결국 2022년 7월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를 방문해 원유 증산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사우디는 미국의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친히 사우디를 방문했음에도 증산 요청이 거부되면서 큰 뉴스가 됐다. 그래도 이때는 상황이 지금보다는 나았다. 당시 바이든 정부에게는 몇 가지 대응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카드는 역시 기준금리 인상이다. 바이든이 사우디를 방문했던 작년 7월 당시 연준의 기준금리는 2.5% 수준이었다. 사우디에게 증산 요청에 실패한 이후 기준금리는 지속해서 인상돼, 작년 연말에는 4.5%까지 올라갔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국제유가도 금리의 영향을 받는다. 금리가 올라가면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가 위축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석유 소비를 감소시킨다.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사우디의 감산 효과를 상쇄하고, 결과적으로 유가 상승을 완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산유국의 수익 감소로 이어진다. 미국은 이러한 방식으로 석유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 연준은 금리 인상을 장기간 멈추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내비치면서 ‘시장 기대’에 의한 유가 상승 가능성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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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대응책은 전략비축유(Strategic Petroleum Reserve, 이하 SPR)*[efn_note]※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 에너지부에서 관리하는 전략 원유 비축분이다.[/efn_note]의 방출이다. 미국은 2020년까지만 해도 약 6.5억 배럴의 SPR 재고 수준을 유지했다. 유가 상승이 본격화되자 바이든 정부는 ‘21년 ~ ‘22년 내내 수시로 비축유를 방출했다.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약 3억 배럴의 비축유가 시장에 풀렸다.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이렇게 많은 비축유가 방출된 사례는 없었다. 결국 현재 미국의 비축유 재고는 1983년 11월 이래 최저 수준인 3.5억 배럴까지 떨어졌다.
SPR의 가장 큰 목적은 가격 조절이 아니다. 가격의 안정도 중요한 기능이기는 하나 전쟁 재난 또는 오일쇼크와 같이 원유 공급의 중대한 차질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는 목적이 더 크다. 또 비축유 방출은 훗날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는 점에서 미래의 유가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지난 2년간의 SPR의 방출은 유가 상승의 모멘텀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키며 유가 상승을 일부 억제하게 된다.
위와 같은 정책 수단과 올해 상반기 중국의 경기 침체 등으로 국제유가는 2023년 상반기 증 배럴당 70~80달러 선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유가가 안정되자 미국의 CPI도 올해 1월 5.7%에서 7월 4.8% 까지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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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 카드를 소진한 미국

‘23년 7월 이후 다시 유가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 7월 WTI 기준 배럴당 70달러 초반이던 유가는 이후 계속 상승해 9월에 WTI와 브렌트유 공히 90달러를 돌파했다. 10개월래 최고치였다.
지금 유가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사우디를 비롯한 주요 OPEC+ 회원국의 적극적인 감산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연말까지 유가가 지속해서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매우 우세하다. 지난 9월 22일 JP모건은 유가가 15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리포트를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향후 유가 강세가 지속되더라도 미국에게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연준은 이미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10회 연속 기준 금리를 인상한 뒤 6월에 금리 인상을 멈췄다. 가장 최근인 지난 9월 22일에도 연준의 파월 의장은 기준금리를 5.25~5.50%로 동결했다. 그러나 그는 필요하다면 다시 금리 인상을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은 거의 끝났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재차 금리 인상을 추진할 수 있다는 발언에 주가도, 유가도 주춤했다. 그는 “연준의 양대 책무 즉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을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며, 여전히 현재 물가 수준이 약 4.3%로 높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또 장기적으로 2%의 물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다시 금리가 이미 5% 중반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더 올릴 여지는 적다. 또한 SPR의 재고도 1983년 이래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더 이상의 방출은 비상시 대응 능력을 희생하게 된다. 지금 미국은 비축유를 부지런히 충유할 시점이지 방출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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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사우디

이런 상황에서 왜 사우디는 고집스럽게 감산을 유지하는 것일까? 미국의 파워와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미국의 의사에 반하는 감산은 사우디에게도 엄청난 부담이다. 또한 유가가 높을 때는 많이 팔면 이익이다. 감산으로 인한 가격 상승률은 한 자릿수를 넘기 어렵다. 반면 감산으로 인한 판매액 감소율은 현재 10% 이상이다. 그런데도 사우디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일부러 생산을 줄이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경제적 이익보다 더 중요한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1932년 사우디 왕국 건국 이후 사우디의 최대 관심은 국가 안보와 체제 유지였다. 사우디는 이란과 예멘의 반군 등과 싸워야 한다. 특히 중동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진 시아파 맹주국 이란은 수니파의 종주국 사우디의 최대 위협이다. 이러한 중동의 상황 때문에 사우디는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군사적 열세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사우디에게 미국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또 사우디는 매년 천문학적 규모로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사우디는 안정적이지 않다. 왕가에 부정적 인사들과 맞서며 왕정 체제를 유지해야 했다. 2010년 이후 사우디 왕실은 왕정의 안정적 유지에 더 큰 위협을 느끼게 된다. 2010년 이후로 반정부 시위가 중동 전역을 휩쓸었다. 이른바 ‘아랍의 봄’ 이었다. 당시 강력한 권력을 누리던 지도자들이 잇따라 실각하고 심지어 처형됐다. 2011년에 30년 넘게 권력을 유지한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1981~2011년)이 붕괴했다. 또 무려 42년간 철권통치를 하던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도 붕괴했다. 무바라크는 병사했지만, 카다피는 민중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반정부 시위가 중동을 휩쓸 때 사우디는 불안한 눈길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이란에서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통해 왕정이 붕괴했다. 사우디 왕실의 입장에서는 이란,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벌어진 일이 사우디에서 벌어지면 안 된다. 그러한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왕실은 개혁적이어야 하고 유능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동시에 어느 정도 탄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암살되고 다수의 반체제 인사가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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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VS 바이든 정부, 핵심은 자국의 안보

사우디의 최대 관심사는 국가와 왕실의 안전이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바이든 정부는 사우디의 핵심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폈다. 사우디가 반체제 인사를 탄압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또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 인권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 새로운 것이 아님에도, 바이든 정부만 유독 사우디의 인권 상황을 지적하며 소위 ‘왕따’와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
또한 사우디 남쪽 국경에서는 적성국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예멘의 과반을 휩쓸며 간혹 사우디 본토의 원유 시설을 공격한다. 이러한 후티 반군과 예멘 정부간 전쟁은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성격이 짙다. 만약 친이란 세력인 후티 반군이 예멘을 점령한다면 사우디는 자국 안보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이란과의 완충 지대를 잃게 된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는 예멘 내전에 대해서도 개입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사우디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하는 미국에 대해서 사우디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지렛대는 결국 유가일 수밖에 없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사우디는 유가를 통해 끊임없이 자국의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작년 7월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의 무하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이하 MBS)을 찾아왔을 때 왕세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MBS는 바이든의 증산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석유 시장의 영향력을 드러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감산을 더 강화하면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중국의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약하게 나타나면서 사우디의 감산 효과를 상쇄했다. 사우디로서는 사활적 이익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감산을 꿋꿋이 유지하며 결국 하반기부터 상승장을 이끌어 냈다. 이후 사우디는 미국에게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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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Reuters)

사우디가 진정 원하는 것

지난 9월 사우디는 원하는 것을 미국에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사우디가 미국에게 원한 것은 ‘한-미 동맹 수준’ 의 관계다.*[efn_note]※ The New York Times, “Biden Aides and Saudi Explore Defense Treaty Modeled after Asian Pacts”, 2023.9.19. ※ 중앙일보, “한미 동맹 급 안보 원한다.” 빈살만 배짱 요구에 속타는 바이든”, 2023.9.19. [/efn_note] 1945년 이후 미국은 사우디의 체제 유지와 안보를 보장해주고 사우디는 미국에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하는 상호 협조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한-미 상호방위조약(1954년)*[efn_note]※ 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간에 조인되고 1954년 11월 18일에 발효되었으며 상호방위를 목적으로 체결된 조약. 한국(남한) 방위를 위하여 외국과 맺은 군사 동맹으로서, 이는 최초이며 지금까지 유일한 동맹조약이다.[/efn_note] 과 같은 국제법에 의한 조약은 체결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우디는 꾸준히 미국에게 안보 협력 관계를 NATO*[efn_note]※ 북대서양 조약 기구 또는 북대서양 동맹을 칭한다. 세계 주요 국제기구 중 하나로서,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 31개의 회원국들 간의 정치 및 군사 동맹이다. 회원국들은 안보 및 방위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한다.[/efn_note] 또는 한미 동맹급으로 격상시킬 것을 요구해왔다.

사우디는 한미 동맹 수준으로 협력 관계를 업그레이드 하면 아랍의 원수였던 이스라엘과도 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한다. 지난 3월에도 사우디는 사우디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가로 안전보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3월의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이하 수준으로 유가가 물가를 위협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Foreign Policy紙*[efn_note]※ 격월로 발행되는 미국의 간행물이며 1970년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과 워렌 데미안 만셸(Warren D. Manshel)에 의해 창간됐다. 포린 폴리시는, 포린 어페어스와 함께 국제 문제 전문지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있다.[/efn_note]는 사우디 정부의 요청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놨다. 사우디의 안보도 안보이지만 경제적으로도 미국의 ‘안보 우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MBS는 대규모 해외투자 유치를 통해 네옴시티 프로젝트*[efn_note]※ 사우디가 지난 2017년 석유 중심의 경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발표한 ‘비전 2030′(국가 장기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이다.[/efn_note]를 추진하며 국가를 개혁하고자 한다. 그러나 안보가 확보되지 않고서는 해외 투자자 유치가 힘들기 때문에 거듭 미국에게 안보 우산 제공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의 요청이 미국의 현재 중동 정책에 부합하지 않음을 강조하며, 워싱턴은 리야드에 ‘No’라고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efn_note]※ Foreign Policy, “Why Washington say no to Riyadh”, 2023.3.21. [/efn_note] 미국은 그럴 만한 여력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7월 이후 미국이 협상에 응할 이유가 생겼다. 3월에 유가는 80달러 아래에서 안정된 상태였으므로 사우디의 협상력이 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7월 이후 유가는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 사우디는 자신의 안보가 확보되지 않는 이상 미국의 원유 증산 요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사우디의 일관성이 강한 지렛대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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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또 다른 카드

미국에게는 금리와 SPR외에 석유 시장에 영향을 미칠 다른 수단도 있다. 지난 8월, 미국 정부는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의 제재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에는 이란에 대해서 석유 수출 제재 위반 단속을 완화하면서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크게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상반기 260 b/d만 수준이었던 수출량이 최근 320 b/d까지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량이 유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이란은 하반기에 원유 수출량이 크게 늘어서 내년에 제재가 완화돼도 증산 여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베네수엘라도 수년 간 투자 부진과 관리 부실로 원유 생산 시설이 황폐화된 상황이다. 증산을 시도해도 내년 최대 약 20 b/d만 정도의 소폭 증산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 의회는 작년 5월 유가 상승기에 ‘석유 생산 및 수출 카르텔 금지 법안’을 상원에 상정했다. 이른바 NOPEC(No Oil Producing or Exporting Cartels)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은 사우디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의 감산 공조를 일종의 불공정 담합 행위로 보고 이를 법적으로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 법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될 경우 미국에서는 생산량 담합에 참여한 회원국 OPEC 또는 해당 석유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법안이 산유국을 더 자극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원유 수급을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법안의 통과 가능성은 높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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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현 시점에서 물가 상승률을 2% 내외로 안정시키고 그것의 선결 조건인 유가안정을 위해 미국이 할 수 있는 옵션은 매우 제한적이다. 사우디의 바람대로 한-미 동맹 수준의 상호 방위조약을 체결하던지, 아니면 기준금리를 더 인상하는 처방이 필요하다.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미국 내 셰일기업이 더 많은 원유 생산이 가능하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금리는 이미 높은 수준이고 셰일 기업에 우호적 정책은 바이든 정부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사우디와 안보 협력 강화도 셰일 혁명 이후 미국의 대 중동 정책의 기조와 맞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유가가 100 달러에 육박할 경우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뉴욕타임스(9.19일자)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는 현재 사우디와 한미 군사 동맹에 준하는 높은 수준의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ce treaty) 체결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efn_note]※ The New York Times, “Biden Aides and Saudi Explore Defense Treaty Modeled after Asian Pacts”, 2023.9.19. [/efn_note] 향후 유가가 현 수준에서 더 높아진다면 미국과 사우디 간 새로운 조약이 체결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아니면 연준이 매파적 발언을 지속하며 기준금리 인상 의지를 계속 내비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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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 과장 - 스마트데이터센터 정보분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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