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소발전을 RPS(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에서 분리해 별도의 거래 시장을 구축하기로 했는데 세계 최초 사례로 꼽히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청정 수소 개발, 보급이 주목받고 있고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위기의 대안으로 수소가 떠오르면서, 정부는 RPS와 별개의 시장 육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수소발전 입찰시장에는 수소와 암모니아를 연료로 사용하는 연료전지, 수소터빈, 석탄-암모니아 혼소발전, 수소엔진 등 다양한 수소발전 기술들이 총망라돼 참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입찰시장을 통해 기업들의 수소발전량을 미리 확정해 수소 생산-유통-활용 생태계 전반에 민간 투자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투자 계획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수소발전의 설계 및 향후 운용 방식, 기대 효과 등을 들여다본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수소 비중 높아져
‘수소(H2)’가 차세대 청정에너지로 주목받는 배경은 온실가스 배출 기여도가 높은 화석연료의 단점과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변동성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햇빛이나 바람, 물 같은 자연에너지는 기
상 여건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달라지고 수급도 일정하지 않아 공급 안정성이 생명인 발전 시장을 주도하기에
는 아직 한계가 분명하다. 반면, 수소에너지는 우주 전체 질량의 75%를 차지할 만큼 풍부하고 화석연료 대비
발열량이 3~7배에 달해 발전 효율성 측면에서도 탁월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제한된 산유국에 매장되어 있는 원유, 천연가스 등과 달리 지역별 편중도도 낮다.
심지어 땅속에도 자연 발생 상태의 수소가 매장되어 있는데 자원개발 공기업인 석유공사는 국내 5개 지점에서
수소 부존 가능성을 확인하고 탐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수전해, 즉 물을 전기 분해해 수소를 생산할 수도 있으
니 석유, 천연가스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에너지 자립을 실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에
너지원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 정부는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 및 세계 1등 수소산업 육성’을 국정과제로 설정했고 ▲규모·범위의
성장(Scale-Up) ▲인프라·제도의 성장(Build-Up) ▲산업·기술의 성장(Level Up) 등 ‘3大 성장(3UP)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중 ‘청정수소 기반 생태계 전환을 위한 인프라·제도 구축 방안’의 하나로 ‘수소발전 입찰시
장’에 주목하고 있다.
국가 에너지 로드맵 중 하나인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에서도 ‘수소’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최근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 수소암모니아 발전량은 13TWh, 전체 발전
원 비중은 2.1%로 설계됐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마지막 해인 2036년에는 수소암모니아 발전량이
47.4TWh, 발전원 중 비중은 7.1% 까지 확대된다.
정부는 별도의 수소발전 입찰 시장도 개설한다. 그동안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 Renewable
Portfolio Standards)를 통해 연료전지 중심으로 수소발전을 보급해왔다. RPS는 500MW 이상인 발전사업자
들이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의무 공급하는 제도인데, 첫 도입된 2012년에 2%로 출발해 올해는
14.5%가 적용된다. 올해 전기 공급자의 총 발전량 중 14.5%는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돼야 하는데 내년에는
17.0%, 2026년 이후 부터는 25.0%가 적용된다.
하지만 태양, 바람 같은 자연에너지와 달리 수소는 별도의 연료비용이 필요하고 연료전지를 비롯해 터빈, 엔
진, 암모니아 혼소 등 다양한 수소발전 관련 기술들이 요구되는 점을 감안해, RPS에서 분리하고 수소발전 입찰
시장을 개설한다고 산업부는 밝혔다.
수소 생산 과정 감안, 일반·청정 시장으로 구분
원칙적으로 ‘수소발전’은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는 ‘무탄소 발전원’이다. 다만 발전 연료인 수소의 생산 과정에
따라 탄소가 배출되는 점이 아직은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석유화학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 수소나 천
연가스를 고온·고압 수증기와 반응시켜 생산한 개질수소의 경우, 추출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며 회색 즉
‘그레이(gray) 수소’로 불린다. 하지만 석유화학 공정 등의 부산물인 탓에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천연가스 개질 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를 포집해 그레이 수소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정한 청색 즉 ‘블루
(blue) 수소’는 화석연료 기반이라는 한계와 온실가스 포집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등이 제약이 된다.
궁극의 무탄소 수소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전기 분해해 생산해 녹색 즉 ‘그린(green)수
소’로 칭하는데,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높아 경제성이 떨어지고 대량 생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린수소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가장 환경친화적이만 당장은 현실 가능하지 않다는 고민이 정부의 수소발전
설계에 묻어 나고 있다. 초기에는 그레이 수소 등을 활용한 발전도 입찰 대상에 포함시키는 현실적인 타협책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수소발전 입찰시장은 일반수소와 청정수소로 구분 개설된다. ‘일반수소 발전시장’은 화석연료
기반의 추출·부생수소를 사용할 수 있고 ‘청정수소 발전시장’은 블루나 그린수소를 사용하는 발전기만 진입이
가능하도록 설계된다. 당장 수급이 원활한 일반수소 발전시장은 올해 개설해 2025년 상용화 물량부터 입찰을
받는다. 정부 고시에 따르면 2025년부터 2027년 사이 상업 운전되는 일반수소 발전설비를 통해 연간
1,300GWh의 전력을 공급받는 입찰을 연내 실시한다. 이후 일반수소 발전 입찰 물량은 단계적으로 줄인다.
청정수소 발전시장은 내년 개설해 2027년 발전량부터 연간 3,000~3,500GWh 규모로 신규 입찰을 진행하
고 2028년 이후부터는 연간 6,500GWh로 확대한다.
수소, 암모니아 같은 무탄소 에너지원을 LNG, 석탄 같은 화석연료와 혼합하는 ‘혼소발전(混燒發電, co-
firing)’도 입찰 무대에 등장한다. ‘혼소(混燒)’는 ‘혼합연소’의 줄임말로 두 가지 연료를 섞어 산소와 결합시킨
다는 의미다. 혼소발전에서 수소와 암모니아가 등장하는 이유는 이들이 연소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혼합비율이 높아질수록 환경 유해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LNG에 수소를 35% 혼합, 발전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 줄어들고 수소 혼소율이 70%이
면 40% 이상을 감축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소, 암모니아를 활용한 100% 전소(全燒)발전이 가
장 환경친화적이지만 기술·경제성 등의 한계로 혼소발전을 청정수소 발전으로 인정해 입찰한다.
선도시장으로 설계, 10년 이상 중장기 구매 계약
정부는 지난 1월 한국전력거래소를 수소발전 입찰시장 관리기관으로 지정했고 올해 일반수소를 대상으로 첫
입찰이 개시된다. 제도적으로도 일반수소와 구분되는 청정수소 인증제 도입 기반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인데,
연내 구체적인 기준 설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내년 부터는 청정수소 발전 입찰도 개시한다. 입찰은 현물시장(Spot Market)이 아닌 선도시장(Forward Market) 개념으로 설계, 운영된다. ‘선도시장’은 다가 오는 특정 시
장에 일정 물량의 특정 상품을 미리 정한 가격으로 매매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는다.
정부가 선도계약 방식으로 수소발전 입찰을 설계한 배경은 2025년 이후의 연간 수소발전 물량을 확정할 수
있고, 수소발전 개시 이전에 청정수소 생산시설과 배관 등 연료공급 인프라 투자를 일으켜 청정수소 공급망 생
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발전 사업자의 공급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입찰시장에서 낙
찰된 수소발전량은 10~20년 동안의 중장기 계약을 맺고 전력시장에서 우선 구매하게 된다.
수소 입찰 시장에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산하 발전 공기업들과 GS칼텍스, SK E&S 같은 민간 에너지 사
업자들이 전력 공급사로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서발전과 함께 여수산단에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GS칼텍스를 비롯해 공공발전을 포함한 민간 기업들의 수소발전 진출이 가시화되면 입찰시장
경쟁도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소발전 입찰시장 구매자들은 전기사업법에 근거한 전기사업자인 한전, 구역전기사업자로 제한된다. 산업부
는 수소발전 입찰을 통한 전체 구매량을 2025년 1,300GWh에서 2028년에는 1만4,700GWh로 단계적으
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다만 대규모 전력 소비 업체들이 수소발전 입찰 구매에 참여하는 길은 허용된다. 글로
벌 기업들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이른 바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이 단순한 ‘캠페인’의 선을 넘어 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무역장벽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
다.
문제는 우리나라처럼 재생에너지 발전 환경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제조 기업들이 RE100을 충족할만한 전력
공급처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RE100의 확장판 격으로 원전까지 포함된 ‘무탄소전원’을 지향
하는 ‘CF100(Carbon Free Energy 100%)’이 주목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는 RE100이나 CF100 달
성을 위해 무탄소전력 구매가 필요한 기업들도 수소발전 입찰 시장에 구매자로 참여해 친환경 전력을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민간 자발적 참여 확대 위해 정책적 강화돼야
정부 계획대로 수소발전이 활성화되면 2030년 기준 온실가스 약 830만톤 감축과 분산형 전원 약
8,000GWh 보급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만 세계 1등 수소산업 육성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정부를
믿고 민간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시장 형성’을 지원해야 하는 점은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수소발전 입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설비 용량 기준으로 연간 200MW로 한정하면서 민간 투
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까지 정부가 허가한 연료전지 설비가 6,000MW 규모로 알
려진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투자는 입찰 시장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수소 가격이 여전히 비싸 타 발전 연료에 비해 비용 경쟁력이 떨어지고 발전 관련 막대한 설비 투자비가 소요
된다는 점에서 적정 수익 보장도 요구되고 있는데 오히려 정부 지원을 줄고 있다.
수소연료전지에 적용되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REC) 가중치가 기존의 2.0에서 1.9로 낮아졌고 SMP(전력
도매가격) 상한제 시행으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조금 성격의 REC는 신재생에너지로 생
산한 전력량에 정부가 설정한 가중치를 곱해 결정되는데 수소연료전지 가중치가 낮아지면서 그만큼 수익성은
떨어지게 됐다. 천문학적 적자에 내몰리고 있는 한전 경영 악화를 우려해 도입된 SMP 상한제가 적용되면 수소
발전 전기 요금을 보전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산업부는 수소발전 입찰시장 개설 배경을 ‘수소발전 사업자간 가격경쟁으로 수소발전 단가 하락을 유
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넷제로의 강력한 이행 수단으로 각광받는 수소발전의 정책적 육성 시점부
터 민간의 치열한 경쟁을 전제하고 있어, 정부 정책 목표에 민간이 호응할 수 있는 다양한 인센티브 개발이 요
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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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 에너지 플랫폼 뉴스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