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대한민국 석유산업의 현재와 미래 : 국가 성장 동력에서 글로벌 수출 선도산업으로

GS칼텍스 -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의 석유산업이 세계 정상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정제능력이 세계 5위, 석유소비가 세계 7위를 차지하고 있음은 우리나라 석유산업의 위상과 중요성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한국의 석유산업이 오늘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국내 정유사들이 세계적 규모의 정제시설을 구축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뿐 아니라 일찍부터 수출을 염두에 둔 설비 및 물류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내수시장이 한정된 상황에서 성장동력의 돌파구를 확보하기 위해 수출시장에 주력해 왔다. 휘발유, 경유, 항공유, 윤활유 등 석유제품의 수출량은 국내 생산량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석유제품은 우리나라 연간 품목별 수출 순위 2~5위를 유지하고 있다. 미래의 석유산업은 여러가지 도전요인에 직면해 있으나 여전히 우리나라 산업의 중추 역할을 지속할 것이다.

자원 빈국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석유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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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커다란 요인 중 하나가 석유의 안정적 확보라 할 수 있다. 국내 정유사들이 해외에서 다양한 유종의 원유를 수입해 이를 부가가치가 높은 석유제품으로 만들어 국내 수요는 물론 수출 수요에 충당함으로써 일반 국민의 안정적인 생활과 기업의 생산활동, 국가 수출 증대 등에 크게 기여했다.    

대한민국은 중동, 미주·유럽, 아시아 등 세계 20여개국에서 80종의 원유를 하루 평균 약 270만배럴 도입, 이를 석유제품으로 정제해 7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2023년 석유제품 수출액은 522억달러로 전체 수출액 6327억달러의 8.2%를 차지했다. 수출비중이 2009년 6.3%, 2010년 6.8%에서 점차 높아졌으며, 2023년 수출비중은 전년(9.2%)보다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반도체(15.8%), 자동차(11.2%), 일반기계(8.5%)에 이어 네 번째를 차지했다. 품목별 연간 수출 순위에 변동은 있지만 석유제품은 그동안 2~5위를 차지해 왔다.  

수출 만이 아니다. 석유산업은 도로, 해운, 항공 등 국내 수송 분야에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뿐 아니라 석유화학 산업에 중간 소재를 공급하는 등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도 크게 나타내고 있다.

정제 능력이 1965년 하루 3만 3,000배럴에서 2021년 357만 2,000배럴로 108배 증가해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석유소비가 2021년 하루 281만 3,000배럴로 세계 7위를 차지하고 있음은 우리 석유산업의 위상과 중요성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한국 석유산업, 이해 관계의 충돌 속에서 발전을 거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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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야록 등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석유산업은 1880년대에 국내로 미국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진출하며 시작된다. 1910년 한일 합방 이후 미국 소코니와 텍사코, 영국 쉘 등 외국계 석유회사가 본격적으로 진출했으며, 여기에 일본계 석유회사 4개가 추가돼 국내 석유산업이 운영되었는데, 일본계 석유회사들은 ‘조선석유회사’에 영업권을 넘기고 철수했다. 그 후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석유산업은 외국 기업들의 철수·재진입 속에 근근히 명맥을 유지했다. 국내 석유 공급은 미국과 유엔의 원조에 크게 의존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 기울어진 국내 정유공장 설립 노력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면서 결실을 맺게 되었다. 1962년 대한석유공사가 설립되었고, 1967년에는 여수에 럭키화학과 칼텍스의 합작으로 최초의 민간 정유사인 호남정유가 설립되어 1969년 가동을 시작했다. 호남정유는 1996년 LG칼텍스정유로 사명이 변경되었고, 2005년 GS그룹의 출범과 더불어 GS칼텍스로 사명이 다시 변경되었다. 이 밖에도 정부의 경제시설 확충 계획에 따라 1972년에는 경인에너지, 1980년에는 쌍용정유, 1988년에는 극동정유가 잇따라 설립됨으로써 국내 석유산업의 본격적인 성장 발판이 마련되었다.

한국의 석유산업은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시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발전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과거 140여년 동안 석유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충돌과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했고, 한 때는 정부의 보호와 규제 속에서, 지금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정부는 석유산업에 대한 핵심적 규제였던 가격, 신규진입, 설비, 수출입, 유통경로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거나 폐지하고, 국내 석유시장의 자유화 및 대외개방 정책을 채택하였다. 한편으로 국내 정유산업은 자유화, 개방화 속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겪었다. 당시 정부는 정유를 비롯한 반도체, 항공기, 철도차량, 선박용엔진, 발전설비 등 주요 업종에서 기업간 빅딜을 추진했다. 설비과잉으로 인한 과당경쟁을 막고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전문화·대형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였다. 정부 정책에 따라 SK(주), LG정유, 쌍용정유, 한화에너지, 현대정유 등 5개사 중 현대정유가 한화에너지 정유 부문을 인수했다. 당시 이헌재 금융위원장은 “현재 5개사가 과열경쟁을 벌이고 있는 정유업계도 사업교환이 필요하다”, “일부 정유사의 경우 해외매각도 추진되고 있으나 이는 오히려 정유업체 간 경쟁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높은 만큼 빅딜을 통한 구조조정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정유업계 빅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러한 가운데 석유산업을 둘러싼 환경도 변화했다. 석유제품 수입자유화 조치로 인해 시장 경쟁이 격화되었으며, 확대된 시장 경쟁은 석유산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차별화를 모색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정유산업은 내수산업이라는 한계를 넘어 고수익을 창출하는 수출전략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전국의 주유소 수가 증가하면서 국내 유통시장의 경쟁을 더하고, 소비자 선택의 기회를 확장시키는 등의 변화가 생겼다.

고도화 시설 투자로 수출 시장을 공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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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석유산업이 오늘날 높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국내 정유사들이 세계적 규모의 정제시설을 구축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뿐 아니라 일찍부터 수출을 염두에 둔 설비 및 물류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유업체들의 경우 정제능력이 하루 10만 배럴 정도로 한국 업체들에 비해 중소 규모이다. 애당초 수출을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아 대형 탱커나 펌프 등의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단일 정제공장의 정제능력은 하루 80만 배럴 안팎에 달하는 설비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는 한국 업체들이 차별화되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업체들이 고도화 시설투자를 꾸준히 진행해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룬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의 국제 석유제품 시장 추세를 살펴보면 단순 정제마진은 낮아지고 크랙마진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경질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시장 상황에서는 고도화 시설의 비율이 높으면 2차 정제를 통한 수익의 규모가 더 커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의 제품 단위당 에너지 사용량이 세계 평균 수준을 100으로 할 때 77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에너지 생산이 그만큼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석유산업이 수출산업으로 탈바꿈한 데에는 내수의 한계와 국내시장의 공급과잉 상황에서 수출시장 확대를 통해 신규 수요를 창출한 정유산업의 경영전략이 주효했다.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서도 정유사들의 설비가동률이 제조업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90% 이상을 대체로 유지해 온 것은 수출물량을 크게 늘린 결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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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유사들은 내수시장이 한정된 상황에서 성장동력의 돌파구를 확보하기 위해 수출시장에 주력해 왔다. 석유제품 수출물량은 1990년 2718만 배럴에서 2018년 5억 3156만 배럴로 20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최근 몇 년간 다소 줄긴 했으나 2023년에 4억 9440만 배럴을 기록했다. 2024년 상반기 수출물량은 2억 5744만 배럴로 전년 동기 대비 6.3% 증가했다. 2023년의 경우 국내 석유제품 생산량은 12억 4648만 배럴이었고, 이의 39.7%인 4억 9440만 배럴이 수출되었다.

 수출 주력 품목은 휘발유, 경유, 항공유, 윤활유 등이다. 석유제품별 수출비중(금액 기준)을 보면 2023년의 경우 경유 41.1%, 휘발유 19.7%, 항공유 19.3%, 윤활유 7.9% 순이다. 석유제품은 연산품인 특성상 특정 제품만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국내시장에서 제품의 과부족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2023년의 경우 경유는 생산량의 55.7%를 수출했고, 액화석유가스(LPG)는 생산량이 모자라 국내 소비의 78.6%를 수입으로 충당했다.  

한국 정유사들의 수출활동이 얼마나 왕성한지는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면 쉽게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에너지유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수출물량 비중이 2000년 33.0%에서 2022년 40.0%로 높아졌다. 이에 비해 일본은 에너지유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수출물량 비중이 2008년 15.8%에서 2022년 19.1%로 다소 높아지긴 했으나 한국에 비해서는 크게 낮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통계연보’). 국내 석유산업이 국가수출에 크게 기여하며 지속적 성장을 이룩해 왔으나 수익성 측면에서 보면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석유산업이 고수익 업종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으나 이는 반드시 타당하지는 않다. 석유산업은 특성상 경제성장률, 유가, 환율 등 대내외 경제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최근에는 기후변화, 국제정세 등의 이슈로 실적 변동폭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에는 5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적자를 낸 바 있다. 고유가가 시작된 2007년 이후 국내 정유 4사의 정유부문 누적 매출액은 1570조원, 영업이익은 29조 원으로 영업이익률 평균은 1.8%에 불과하다. 이는 석유메이저인 엑슨모빌의 2022년 한 해 순이익 약 70조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칠 뿐 아니라, 국내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 6.5%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준이다. 저조한 영업이익률은 단순정제마진과 크랙마진 등 마진 악화도 반영하고 있다. 이 점에서 정유산업은 고수익 업종이 아니라 박리다매형 구조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변화에 직면한 석유산업, 다각적인 지원 필요해

그동안 석유산업은 국가경제를 떠받치는 주춧돌 역할을 해 왔으나 대내외 여건변화로 다양한 도전요인에 직면해 있다.

대외적으로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 전환이 진행되고 있어 석유산업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보고서(“The Oil and Gas Industry in Net Zero Transitions”, 2023.11. 23.)에서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목표 추구가 향후 석유산업의 수익성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과 인도, 중동 등 개도국을 중심으로 정제시설이 늘어나는 가운데 일부 석유제품을 중심으로 공급과잉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석유산업이 고수익 산업이라는 잘못된 인식하에 정부나 정치권이 가격통제 등 반시장적 정책을 남용하거나 횡재세 도입 논의 같은 조세압박을 가하는 등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정책당국은 정유업계가 다양한 도전요인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정유업계에 대한 비후호적인 시각부터 청산하고 반시장적 정책부터 시정해야 한다. 업계는 업계대로 자구노력을 강도높게 기울여야 한다. 제품 고도화는 물론 시대의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통해 소비자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많이 받도록 해야 한다. 또한 에너지전환 조류에 맞추어 청정에너지 등 다른 분야로의 사업다각화도 서둘러야 한다. 수소 및 수소 기반 연료,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해상풍력, 액체 바이오연료, 바이오메탄, 지열 에너지 등이 다각화 대상 영역이다.

 ※ 본 콘텐츠는 온기운 고문의 기고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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