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산유국이 석유수출하는 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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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 통해 수입한 원유, 부가가치 더해 전세계로 수출하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4%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원유는 전량 해외산이다. 에너지자원 빈국인 탓에 국가 수입에서 에너지 특히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그런데 원유 수입을 늘리는 것이 국가 무역 수지에 도움이 되고 있다. 단일 설비 기준으로 세계 최대 정제 능력은 규모의 경제에 기여하고 높은 고도화비율은 생산 부가가치를 높이면서 우리나라가 석유 수출 강국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유사가 국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기여도를 구체적인 통계와 숫자로 풀어본다.

국가 수출액 100원 중 8.3원이 석유제품

지난해 우리나라 수입액은 6,426억 달러로 집계됐다. 그런데 수출액이 6,326억 달러에 그쳐 10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원유 수입액은 866억 달러를 기록했다. 국가 전체 수입액 중 13.5%를 원유를 도입하는 데 사용했으니 단순 통계상으로 석유는 무역수지 적자 배경의 일부가 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원유 수입은 오히려 우리나라 무역 수지를 개선하는 데 일조했다. 수입한 원유로 석유제품을 생산한 정유사들이 상당한 부가가치를 더해 막대한 수출 실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 중 석유제품은 8.3%의 비중을 차지했다. 국가 수출액 100원 중 8.3원이 석유를 팔아 거둔 수입인 셈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 품목으로 반도체, 자동차가 연상되는데 석유제품의 수출 기여도도 최상위권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주력 수출 품목 중 1위는 986억 3,400만 달러를 기록한 반도체가 차지했고 자동차가 708억 7,200만 달러로 2위, 일반기계가 534억 6,300만 달러로 3위에 랭크됐다.

비산유국이 석유수출하는 역발상
그 뒤를 이은 효자 수출 품목이 석유제품으로 521억 달러를 해외에 판매하며 금액 기준 4위를 차지했다. 국가 수출액 중 석유가 차지하는 기여도는 매년 높아지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국가 전체 수출액 중 석유 비중은 5~7%대를 유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석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원유를 쌓아 놓을 비축시설이 부족해 전 세계 정유사들이 애를 먹던 2020년에도 우리나라는 241억 달러 어치의 석유를 해외에 판매했고 당시 국가 전체 수출액의 4.7%를 점유했다. 엔데믹으로 세계 석유 수요가 회복하면서 한국 정유사 석유 수출액은 2022년 630억 달러로 국가 전체의 9.2%, 2023년에는 522억 달러로 8.3%를 기록하며 기여도를 높이고 있다.

수입 원유 중 절반, 석유제품으로 재수출

원유 수입이 많을수록 국가 무역 수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통계가 있다. 석유공사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는 배럴당 평균 102달러에 총 10억 3,128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느라 1,053억 달러를 사용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정유사들은 배럴당 123달러의 평균 단가로 4억 9,702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수출하며 609억 3,809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물량 기준으로는 수입 원유 중 48.2%가 석유제품으로 가공돼 재수출됐다. 금액 기준으로는 원유를 도입하는데 지출된 금액 중 57.8%가 석유 수출로 다시 회수됐다.

지난해에도 1월부터 11월 사이 배럴당 86.09달러에 9억 1,588만 배럴의 원유를 도입하는데 788억 4,430만 달러가 지출됐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배럴당 평균 101.32달러로 4억 4,934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수출해 455억 2,669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해 가공하고 수출하는 가공무역의 최첨단에 석유제품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비산유국이 석유수출하는 역발상

IEA ‘한국은 중요한 정유산업 보유, 석유 자급자족’

지난해 국제에너지기구 IEA는 ‘한국의 석유 안보 정책(Korea Oil Security Policy)’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매우 중요한 정유산업을 보유하고 있어 석유화학 원료를 제외한 대부분의 석유제품을 자급자족하고 있다’(Korea has a very significant refining industry and is self-sufficient in most products, apart from petrochemical feedstocks)고 평가했으며, 우리나라가 ‘하루 350만 배럴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정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With a capacity of 3.5 mb/d, Korea has one of the world’s largest oil refining capacities)고도 밝혔다. 

원유 전량을 수입하는 우리나라가 석유 안보 측면에서는 우수한 평가를 받는 배경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정유산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배경에는 정부의 ‘소비지 정제주의’ 정책 그리고 정유사의 적극적인 시설 투자가 주효했다.
‘소비지 정제주의(消費地 精製主義)’는 석유 소비국이 자국 내에서 원유를 직접 정제해 석유제품을 생산, 소비하는 정책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석유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유효한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석유 소비국에서 석유 완제품을 직접 정제, 생산하면 자국의 석유 소비 구조나 품질 규격에 적합한 완제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리하다. 자국 내 정제설비를 통해 글로벌 석유 수급이나 가격 변동 대응이 가능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2021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천연가스 수급 불안이 야기됐고 대체재로 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수요가 쏠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급 난이 발생했을 때도 우리나라는 석유 수급 불안의 무풍지대였다. 당시 우리나라 역시 경유 소비자 가격이 리터당 2,100원을 넘어설 정도로 고유가에 시달렸다. 석유제품 원료인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탓에 국제유가 상승 요인까지 상쇄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인데 정부는 유류세 인하를 통해 소비자 연료비 부담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다만 유럽 등과 달리 석유 수급 불안 요소는 단 1도 없었다.
주요 석유 소비국들이 회원인 국제에너지기구 IEA 차원에서 세계 석유 수급 안정에 기여하겠다며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하면서 회원국인 우리나라도 1,482만 배럴의 비축유를 풀었는데 국내 원유 수급에 문제가 없었다. 이에 더해 내수를 크게 초과하는 정제설비 능력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는 유럽 등지에 석유제품을 수출하며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 역할로 주목받았다. 원유 수입국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소비지 정제주의 정책을 지향한 결과는 글로벌 에너지 수급 불안 상황에서 세계 석유 공급 여력을 보완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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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유국이 석유수출하는 역발상 | profile 김신

김신 - 에너지플랫폼뉴스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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