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이후 지난 15년간 국제 석유 시장은 과거의 1980년대, 1990년대와는 구별되는 구조적 변화를 경험하였다. 석유 시장이 근본적으로 아래 설명과 같이 변화하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변동성 이슈는 국제 석유 시장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와 관련한 주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한다.
목차
1. WTI의 영향력 증대와 유가변동성 확대
2. OPEC의 전략변화
3. 석유 트레이딩과 오일허브의 역할 강화
WTI의 영향력 증대와 유가변동성 확대
미국의 석유생산이 증가하면서 국제 석유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1970년에 미국의 일일 석유생산은 9.6백만 배럴로 정점을 찍은 후에 점차 감소하였다가 셰일오일 등의 생산증대에 힘입어 2017년에는 종전 수준을 회복하였다. 2018년에는 10.9백만 배럴을 기록하여 미국이 최대 산유국이 되었으며, 이에 이어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20년에 일일 생산능력이 13백만 배럴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산 석유공급의 증가는 세계 유가 전망을 한층 어렵게 하였다. 우선, 미국산 석유의 공급 증가는 과거에 브렌트유보다 비쌌던 WTI의 유가를 낮춰 이제는 WTI가 브렌트유보다 저렴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유사한 가격추세를 보였던 WTI와 브렌트유를 디커플링(decoupling)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디커플링이 심화되면 WTI-브렌트유의 가격 스프레드 변동성이 영향을 받는 요소가 더욱 많아져서 관련한 전망 작업도 복잡해질 수 있다. 또한 미국발 석유 공급의 변동성 자체가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력도 증대되었기 때문에 미국 국내 정책이나 허리케인, 여름휴가철 SUV 이용 증대 등 여러 변수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게 되었다.
* 미국달러지표(TWEXB)는 주요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숫자가 높을수록 달러가치가 높음을 나타낸다.
OPEC의 전략변화
둘째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OPEC의 여건 변화다. 그동안 OPEC은 국제유가가 대략 배럴당 70달러 대에서 유지되는 정책을 구사하였기에 국제유가가 이 범위를 벗어나면 다시 평균 수준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와 같은 정책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우선, 달러 강세가 저유가에서도 OPEC의 이익 수준을 유지해주기 때문에 과거 고유가로 성급히 이행하지 않아도 될 여유를 어느 정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성장 전략의 변화다. 중동 산유국은 2000년대 중반의 고유가 이후 재생에너지가 급속히 확대된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주요국의 기후 변화 정책에 힘입어 재생에너지 증가 속도는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이러한 석유 대체에너지의 확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산유국의 경제성장 정책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변화된 중동 산유국의 정책은 기존의 석유 중심 경제성장 정책에서 벗어나 석유자본을 지식자본 형태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경제의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정책으로, 재생에너지,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오히려 확대하고 있으며, 고급두뇌 유치에 의한 금융, 스타트업 비즈니스 창출, 관광산업 활성화 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Vision 2030이 대표적인 사례로서, 금융, 주택, 삶의 질, 전략적 파트너십, 인적자본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 자원경제학에서는 경제성장과 관련한 이러한 정책을 하트윜 룰(Hartwick rule)이라고 한다. 고갈자원 보유국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sustainable economic growth)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갈자원을 다른 형태의 생산요소, 즉 자본이나 고급인력 개발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석유 트레이딩과 오일허브의 역할 강화
국제 석유 시장이 국가 간, 권역 간에 더욱 촘촘히 연계됨에 따라 변동성 확대에 대응할 수 있는 석유 트레이딩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유가 변동성에 의한 가격 리스크뿐만 아니라 석유 실물의 확보와 관련된 물량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장기계약이나 선물, 선도계약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능을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곳이 오일허브(oil hub)이다. 오일허브는 석유 물류 및 거래 서비스의 중심지로서 석유 상품의 유통과 거래에 필요한 저장시설을 갖추고, 이 시설의 임대 및 운영을 포함하여 장외거래, 선물거래를 통한 국제 거래 기능을 갖춰야 하며, 이를 지원할 수 있는 하부구조로서 금융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요약하자면, 오일허브는 (1)~(4)의 네 가지 요소가 갖추어야 한다.
(1) 석유 상품(원유, 석유제품, 석유화학원료 등)
(2) 거래 시장 플랫폼
(3) 판매자와 구매자 간 거래를 성사시키는 트레이더
(4) 항만시설, 저장시설 및 수송수단
세계 3대 오일허브로는 유럽 ARA (암스테르담-로테르담-앤트워프), 미국 걸프만, 그리고 싱가포르를 들 수 있으며, 우리나라는 이보다 작은 규모이지만 여수와 울산에서 오일허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ARA의 오일허브는 국가의 경제성장 전략과 맞물려서 추진되기 때문에 법인세 면제 등과 같은 세제지원 정책도 함께 시행되었다. 내수 비중이 작은 싱가포르는 수출에 역점을 둔 ‘중계수출형(out-bound)’ 오일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주롱섬을 포함한 4개 항만에서 지하석유매장 시설, 대형 부유저장시설, 정제시설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무엇보다도 아시아 지역의 금융허브 기능도 갖추고 있어서 트레이딩이 활발하다.
유럽의 ARA는 배후지역인 독일을 주된 기반으로 하는 ‘배후지역 수출형(in-bound)’ 오일허브로서 주로 북서유럽과 동유럽의 역내 정제센터 역할 및 트레이딩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지역은 대규모 석유화학단지와 정제시설, 그리고 관련된 저장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유럽 전역을 연결하는 육상, 항만, 항공 교통망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ARA 역시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금융시스템이 잘 구비되어 있어 트레이딩 플랫폼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 걸프만의 오일허브는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에서 석유와 가스 생산을 담당하는 지역으로서 그동안은 주로 내수형이었지만 최근에는 수출형으로도 변모하고 있다. 석유 메이저 외에도 독립계 저장사업자들이 1억만 배럴 이상 규모의 저장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 본 콘텐츠는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박호정 교수로부터 기고를 받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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