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지표 유종은 브렌트, WTI, 두바이유가 꼽힌다. 영국 북해 유전에서 유래된 브렌트(Brent)는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벤치마크 (bench-mark) 역할을 한다. 서부텍사스중질유로 불리는 WTI(West Texas Intermediate)는 미주 시장 원유 거래의 기준점이 된다. 우리나라와 가장 큰 연관이 있는 두바이(Dubai)유는 중동산 원유를 대표하는 가격 지표 역할을 한다.
구도상으로 미주와 유럽 그리고 세계 최대 원유 산지인 중동 등 3개 지역을 대표하는 3개 대표 원유가 각각의 지표 가격 역할을 하고 있으니 나름의 균형을 갖추고 있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새로운 원유 벤치마크를 내세우는 시도들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비OPEC 산유국을 대표하는 러시아, 미국과 더불어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중국 그리고 중동에서도 벤치마크 역할을 노린 선물 시장을 개설했거나 시도 중인데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럽 원유 선물 거래를 주도하는 글로벌 거래소 기업이 중동 원유 선물 시장을 런칭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 기업에서는 GS칼텍스가 유일하게 참가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두바이 원유보다 머반 원유
‘머반 원유(Murban Crude)’는 중동 아랍에미레이트(UAE)에서 생산되는 대표 유종 중 하나로 API 40°인 고품질 경질원유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는 매일 아침 뉴스에서 국제 유가 기준으로 소개되는 두바이유가 익숙할 텐데 최근에는 머반유가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머반유 생산 유전의 주주로 직접 참여 중이고 현지에서 생산한 원유를 국내에 도입해 석유로 정제,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부다비 육상 생산유전인 ADCO 광권은 아부다비 국영회사인 ADNOC(Abu Dhabi Company for Onshore Oil Operation)이 6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GS에너지가 아랍에미리트 2개 육상생산광구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부다비 정부가 ADCO 광구 입찰에 BP, 토탈 같은 메이저 기업들을 비롯한 11곳의 국제 석유회사를 초청했는데 GS에너지를 포함한 한국컨소시엄이 그 안에 포함됐다. ADCO 생산유전은 GS에너지의 광권 참여 계약 체결 시점인 2015년 기준 잔여 매장량이 271억 배럴, 하루 160만 배럴을 생산 중인 초대형 규모로 알려져 있다. 잔여 매장량 순위에서 전 세계 6번째 규모 유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컨소시엄은 아부다비 국영 석유회사인 ADNOC과 더불어 40년 동안의 광구 공동 운영권을 보장받았다. 계약 당시 매장량을 기준으로 40년 동안 한국 측 몫으로 확보 가능한 머반유는 약 5억 6천만 배럴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이곳 유전들의 가채 매장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한 해 수입하는 원유인 약 10억 배럴과 맞먹는 해외 자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GS에너지는 2019년 10월 UAE 할리바 유전에서 직접 생산한 원유의 첫 선적분 10만 배럴을 직도입해 GS칼텍스에 판매했다. 해외 자원개발을 통해 확보한 원유를 국내에 직접 도입해 정제하고 유통시키는 상·하류 체인이 완성된 첫 번째 사례인데 한발 더 나아가 GS칼텍스는 머반유 선물 거래 시장 참여도 선언했다.
줄 잇는 원유 선물 시장 개설 시도
자신들이 생산하는 원유가 글로벌 벤치마크가 되기를, 자신들이 글로벌 선물 거래 시장을 주도하기를 희망하는 시도들은 그동안 꾸준히 이어져 왔다. 비OPEC 산유국의 리더 역할을 하는 러시아는 자국 내 생산 원유를 거래하는 선물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 중 하나인 러시아를 대표하는 원유는 유럽 대표 수출 유종인 우랄스(Urals)유와 아태지역 수출 원유인 ESPO(East Siberian-Pacific Ocean)유가 꼽힌다. 이중 러시아 국제상품거래소(St. Petersburg International Mercantile Exchange)를 통해 2016년 11월 이후 우랄스유가 선물 거래 중이다.
러시아는 2018년 이후 ESPO유 선물 상장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 중 하나인 중국은 지난 2018년 상하이 국제에너지거래소에 원유 선물을 상장했다. 두바이유와 더불어 걸프 역내 영향력이 높은 오만 원유는 두바이상업거래소(DME)에서 선물 거래되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이 도쿄상품거래소(TOCOM)를 통해 2001년 두바이유 선물을 상장했고 인도도 멀티상품거래소(MCX)에서 2006년 원유 선물거래를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물 시장은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시장 참여자들이 제한적이라는 한계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원유 선물 시장을 개설한 배경이 다른 국가들과 사뭇 다르다. 자국 내 막대한 원유 거래 물량을 지렛대로 활용해 선물 시장 거래 화폐를 위안화로 통용 시켜 미국 달러화에 대항할 수 있는 국제 화폐로 성장시키겠다는 복선인데 글로벌 벤치마크로 성장하는데 오히려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ICE, 브렌트·WTI 이어 머반원유 선물 시장도 런칭
그런데 이번에는 ICE가 아부다비 선물거래소(IFAD)를 출범시키고 머반 원유를 새로운 벤치마크 유종으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성공 여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선물 시장을 개설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세계 3대 벤치마크 유종의 벽에 막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적인 평가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ICE의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에도 큰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국 애틀랜타에 본사가 있는 ICE는 세계 최대 거래소 그룹인 인터컨티넨탈 익스체인지(Intercontinental Exchange)를 말한다.
ICE는 세계 3대 벤치마크 유종 중 하나인 브렌트 선물이 상장된 런던 국제석유거래소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 ICE가 이번에는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 아드녹(ADNOC)과 손잡고 아부다비 선물거래소(IFAD, ICE Futures Abu Dhabi)를 출범하며 머반 원유 선물 거래를 런칭하고 있다. 세계 3대 벤치마크 유종 중 유일하게 현물 거래 가격이 공시되는 두바이유에 대응해 유동성이 높은 머반 원유 선물 거래 시장을 개설했다. IFAD는 3월 말 첫 거래에 착수해 약 2개월 후인 6월에 첫 실물 인수도가 이뤄질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선물은 원유 인수도 시점보다 한 두 달 앞선 시점에 거래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상 원유 구매자 입장에서는 가격 예측 가능성은 높이고 불확실성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IFAD측도 ‘두바이 상업거래소에서 운영하는 두바이·오만유 벤치마크와 경쟁 할 것’이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천명중으로 머반 원유를 중동을 대표하는 대표 유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GS칼텍스 포함, 세계 60여 정유사들이 머반 원유 거래
ICE의 아부다비 선물거래소에 글로벌 석유 메이저와 대규모 소비 기업들이 참여한다는 점도 머반원유가 중동산 원유의 새로운 벤치마크로 부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ICE IFAD에는 비피(BP), 쉘(Shell), 토탈(Total), 비톨(Vitol), 인펙스(INPEX) 같은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태국 국영 에너지 기업으로 머반 원유의 대량 구매처인 PTT를 비롯해 중국 국영 석유 기업인 페트로차이나, 일본 최대 석유 기업인 에네오스(ENEOS)도 IFAD 설립에 이름을 올렸다. 머반 원유 생산 유전의 주주이면서 동시에 소비하는 우리 기업도 IFAD 설립에 참여했다.
GS칼텍스는 국내 정유사중 유일하게 2019년 11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IFAD 설립 제휴 계약에 참여했다. GS칼텍스는 2020년 한 해 동안 3,400만 배럴 규모의 머반 원유를 도입했다. 같은 해 이 회사가 수입한 원유가 총 2억 6,000만 배럴 규모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중 약 13%가 머반 원유였을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니 IFAD에 참여할 유인은 충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황 함량 규제로 대표적인 경질원유인 머반 원유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도 IFAD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IFAD 설립에 참여한 기업들은 머반원유 기반의 선물시장이 개설되면 원유 구매자에게 더 많은 해징 기회가 제공되고 가격 투명성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개된 선물 시장을 통해 수많은 페이퍼 거래가 이뤄지면서 적정 가격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원유 거래 가격 정보를 특정 정보 업체가 독점적으로 파악하거나 추정해서 공표하는 현물 시장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원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입장에서도 역내 석유 수급 상황이 제대로 반영된 적정 가격을 선물 거래 과정에서 발견하는 것이 유리한 측면이 크다. 문제는 시장이 신뢰할 만한 유동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GS칼텍스를 포함한 세계 60여 정유사들이 머반 원유를 거래하고 있고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이 설립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IFAD가 다른 선물 시장과 어떻게 차별화를 이뤄낼지 지켜볼 일이다.
함께 보면 좋은 글
김신 - 지앤이타임즈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GS칼텍스에 의해 작성된 본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으며, 지앤이타임즈의 저작물에 기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