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을 줄이면 기후위기 극복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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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우리나라는 기록적인 홍수로(장마 기간으로 역대 1위) 큰 피해를 입었다. 2016년과 2018년 여름에는 역시 기록적인 폭염이(열대야 일수로 각각3위와 1위) 사람들 진을 뺐다. 이제 여름이 다가오는 게 두렵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이런 현상은 지구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온실가스 배출이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지구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각국은 지난 2015년 12월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해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1.5~2도 상승하는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각국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설정했고 우리나라도 2030년에 배출전망치 대비 37%를 줄이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해

그러나 5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기후협약의 선언이 실현될 것이라는데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산업화 이후 150년이 지난 현재 이미 1도가 올랐기 때문에 사실상 0.5~1도밖에 여유가 없는데 2019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위축된 ‘덕분에’ 좀 줄었다.

최근 수년 사이 지구촌에서 각종 자연재해의 규모와 빈도가 갈수록 커지자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러 나라들이 속속 탄소 중립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2050년을 목표로 삼았다. 탄소 중립이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해 ‘순 배출량’을 0이 되게 한다는 뜻이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므로 관건은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게 가장 시급해 보인다. 아울러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 개발과 에너지 절약 습관을 생활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 바로 음식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30%가 음식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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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별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 출처 : 네이처
지구촌 78억 명이 먹고 살기 위해 농작물을 재배하고 식재료를 유통하고 조리하고 음식 쓰레기를 배출하는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게 이산화탄소로 환산했을 때 연간 160억 톤으로 전체의 30%나 차지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농지를 마련하기 위한 숲의 파괴, 비료 생산, 논에서 나오는 메탄(이산화탄소보다 21배나 효과가 큰 온실가스다)과 함께 가축에서 나오는 분뇨와 트림, 방귀의 메탄도 엄청나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미국 미네소타대 공동 연구자들은 음식을 뺀 나머지 영역에서 2020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정하게 줄어 2050년 탄소 중립이 된다는 조건 아래 음식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이 미치는 영향을 여러 시나리오에 따라 분석했다.

예를 들어 지구촌 사람들이 지금대로 먹는다면 2020년부터 2100년까지 음식에서 나온 누적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로 환원했을 때 무려 1조 3560억 톤에 이른다(연평균 170억 톤). 이 경우 2050년 나머지 영역에서 탄소 중립이 실현되더라도 1.5도 이내는 고사하고 2도 이내 유지 목표도 달성하기 어렵다. 따라서 음식 영역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5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식단을 식물성 식재료 위주로 바꾸는 전략이 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즉 육류섭취량을 현재(하루 122g)의 3분의 1 수준인 하루 43g으로 줄인 식단을 세계 인구 모두가 실천할 경우 80년 동안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7080억 톤으로 무려 48%나 줄어든다. 이래도 1.5도 이내 목표는 어렵지만 2도 이내는 가능하다. 육식을 줄이는 효과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육식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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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 소비량 추세. *자료 출처 : 사이언스
그럼에도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현재 지구촌의 육류 소비량은 빠르게 늘고 있는데, 아시아가 그 경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인들의 육류 소비량 증가 추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14억 중국인이 고기에 대한 식탐을 줄이지 않는다면 육식을 줄이는 전략은 말짱 꽝이라는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지난 반세기 동안 육류섭취량이 급증해 붉은 고기(소고기와 돼지고기)의 경우 1인 당 연간 섭취량이 31㎏로 세계 평균 24㎏을 넘는다.

지난 2018년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2050년 세계 육류소비량은 지금보다 적게는 62%, 많게는 144%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쓸까.

우리가 속한 영장류는 잡식동물이지만 먹이의 대부분은 과일이나 잎 같은 식물성이다. 그런데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도구를 만들고 사냥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육식의 비중이 늘어났다. 고기는 과일이나 잎에 비해 영양 밀도가 훨씬 높고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다. 게다가 불을 다룰 줄 알게 되면서 요리를 발명했고 음식 섭취율이 더 높아졌다. 이런 요인들이 합쳐져 인류는 뇌가 더 커지고 내장이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날 인류 대다수는 영양 결핍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영양 과잉으로 인한 각종 대사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입맛은 아직 이런 변화에 맞춰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고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기를 향한 열망이 본능적 욕구라고 인정하고 이를 방치해야 하는 걸까.

육식을 자제해야 하는 3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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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래서는 안 된다. 지구 환경을 위해서 우리는 지금보다도 고기를 덜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 밖에도 육식을 자제해야 할 이유가 더 있다.

먼저 건강 문제로 고기를 적당히 먹는 건 몸에 좋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지난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붉은 고기와 가공육을 발암물질로 분류해 충격을 줬다. 이에 따르면 붉은 고기를 하루 평균 100g 더 먹으면 대장암에 걸릴 위험성이 17% 증가하고 가공육은50g을 더 먹을 때마다 18%씩 증가한다.

다만 붉은 고기는 섭취할 때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제한적이어서 ‘2A군 물질’(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수도 있는 물질)로 분류했고 가공육은 섭취할 때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충분해 ‘1군 물질’로 분류했다. 꼭 암이 아니더라도 지나친 육류 섭취는 심혈관계 질환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육류 섭취를 줄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동물복지를 위해서다. 인류의 엄청난 수요를 맞추기 위해 대다수 가축은 공장식 사육으로 길러지는데 아무래도 삶이 행복할 수가 없다. ‘어차피 몇 개월, 길어야 2~3년 살다 도살장으로 가는 운명인데 그사이 잘 살게 해준다고 생색내는 건 위선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붉은 고기로 바뀌는 가축은 우리와 같은 포유동물로 감정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가축들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하며 살 수 있게 하는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최근 이런 환경에서 키운 가축에서 얻은 식재료를 파는 곳도 하나둘 늘고 있다. 그러나 육식을 줄이지 않으면 모든 가축을 동물복지 환경에서 키울 수 없다. 참고로 현재 지구에는 소가 15억 마리, 돼지가 10억 마리, 닭은 무려 190억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환경과 건강, 동물복지를 위해 육류소비를 지금보다 줄이는 게 맞지만, 먹는 게 ‘삶의 낙’인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변화를 강권하고 따르지 않으면 부도덕하다고 폄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체육 패티 들어간 햄버거 먹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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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 사이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도 있는 방법 두 가지가 등장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대체육과 배양육다. 대체육은 콩 같은 식물성 재료에 각종 첨가물을 더해 맛과 향, 식감이 진짜 고기처럼 느껴지게 한 ‘가짜 고기’다.

최근 개발된 대체육은 과거 콩고기와는 차원이 달라 얘기하지 않으면 진짜인 줄 알고 먹는다고 한다. 지난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소비자가전쇼(CES 2019)’에서 가장 화제가 된 아이템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전제품이 아니라 대체육 패티가 들어있는 ‘임파서블 버거’였다.

이 제품을 만든 임파서블 푸드는 임파서블 버거가 채식주의자를 타깃으로 하는 제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즉 육식을 줄여야 하는 앞의 세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라도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실천을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될수록 대체육은 미식가들도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진짜 고기와 맛이 비슷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쉽게도 임파서블 버거가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아 맛을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 길을 지나가다 한 햄버거 가게 창에서 ‘스위트 어스(sweet earth)’라는, 유명 다국적 식품회사가 만든 식물성 패티를 쓴 버거가 출시됐다는 광고를 봤다. 문득 이번 원고가 생각나서 하나 사봤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꽤 그럴듯했다. 만일 모르고 먹었다면 가짜 고기로 만든 패티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은 대체육 가격이 비싸고 의식하고 먹으면 미묘한 차이가 느껴져 당장 널리 보급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가격 경쟁력이 생기고 맛이 더 그럴듯해지면 햄버거뿐 아니라 여러 음식에서 진짜 고기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배양육(cultured meat)은 세포를 배양해 얻는 ‘진짜 고기’다. 즉 가축의 근육 줄기세포를 배양해 세포 덩어리로 만든 뒤 틀에 고정해 전기 충격을 줘 실제 근육 같은 조직을 만들게 유도해 얻는 고기다. 초현실적 상상으로 들리지만 이미 2013년 네덜란드 아인트호벤공대의 마크 포스트 교수가 배양육 패티 140g으로 만든 햄버거를 선보인 적이 있다.

배양육이 상용화되는데 최대 걸림돌은 물론 가격이다. 2013년 당시 햄버거 하나를 만드는데 무려 30만 달러(약 3억 3,000만 원)가 들었다. 현재 60여 곳에 이르는 스타트업이 3D 프린팅 등 최신 기법을 동원해 배양육을 개발하고 있고 ㎏ 당 수백만 원 수준까지 생산비용을 낮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군가는 식도락을 가리켜 ‘인생 최후의 쾌락’이라고 불렀다. 한 번뿐인 인생 먹고 싶은 걸 먹으며 살겠다는데 이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환경과 건강, 동물복지를 생각해 먹는 양을 좀 줄여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친구 넷이 고깃집에서 만나 삼겹살 4인분을 시켜 먹다가 떨어져 갈 때쯤 예전처럼 고기를 추가하는 대신 밥이나 냉면으로 마무리하는 식으로 말이다. ‘과유불급’이야말로 오늘날 육식에 딱 어울리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식을 줄이면 기후위기 극복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 profile 강석기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한 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프루프: 술의 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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