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명 미술관과 명화를 소개하는 2019 GS칼텍스 캘린더 5월 이야기입니다.
건축미와 독창성을 뽐내는 마천루의 경연장, 시카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관, 박물관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일 것입니다. 미국의 대도시를 가보면 예외 없이 엄청난 규모의 미술관들을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 인상주의부터 이후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소장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세계미술의 중심지는 미국, 특히 뉴욕이 되면서부터 세계 현대미술은 곧 미국현대미술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도시인 시카고 역시 유명한 현대미술관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시카고는 특히 뛰어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기로 명성이 자자해, 많은 건축학도들이 시카고의 건축물을 공부하러 이곳에 온다고 합니다. 1871년에 시카고에 대화재가 일어나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재건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하나둘씩 모여 들면서 시카고는 빼어난 건축미와 독창성을 뽐내는 마천루들의 경연장이 되었습니다.
이후 약 20여 년간 도시 재건에 매달려온 시카고는 1893년 열린 ‘세계 컬럼비안 박람회’를 통해 문화 도시로 화려한 변신을 했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박람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시 당국이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도서관 등 주요 문화 시설들을 도시 곳곳에 세운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The Art Institute of Chicago)도 정식 개관했습니다.
아낌없는 기부와 기증 문화가 만들어낸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시카고의 대부호들이 재정적인 지원과 기부를 아끼지 않았기에, 시카고 인스티튜트는 유럽의 아방가르드 계열의 회화와 조각을 구입하게 되었고 이후 유럽미술의 거장들의 작품들을 소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렘브란트, 엘 그레코 및 드가, 로댕, 쇠라, 르누아르 등 인상파 작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기업인들의 아낌없는 기부와 기증이라는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이들은 상당수의 유럽 회화를 사들인 뒤, 시카고 시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해 평생 모은 작품들을 미술관에 쾌척한 것입니다. 특히나 육류 산업으로 거부가 된 팔머 가문과, 제강 산업으로 부를 일군 라이어슨 가문의 기부는 컬렉션의 질을 업그레이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예는 단지 시카고 인스티튜트에 머물지 않고 미국의 대부분 미술관들에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우리로서는 무척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곳은 그리스•로마 조각 작품부터 미국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5천 년 인류 역사의 변천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총 27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평균 관람객만 약 2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러니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는 프랑스를 제외한다면 인상파 컬렉션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이곳의 인상주의 미술 작품은 걸작들로만 엄선되어 있어서 특히 유명합니다. 특히 모네 작품의 컬렉션은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합니다. 미술사책에 반드시 등장하는 점묘주의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와 구스타프 카유보트의 ⌈비오는 날의 파리 거리⌋도 이곳에 걸려있습니다. 인상파 그룹의 최후의 멤버로 알려져 있는 아르망 기요맹(Armand Gullaumin, 1841~1927)의 걸작인 ⌈아르쾨유의 수도교와 소 철로⌋작품도 바로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맑고 밝은 색채들의 조화가 놀라운 걸작을 만들어내다
이 작품은 아마도 인상주의 그림의 두드러진 특징을 모두 다 지니고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구름, 원경으로 다리와 철로가 있고 근경에 나무가 있는 풍경, 햇살에 빛나는 봄날 자연의 눈부신 자태, 맑고 밝은 색채들의 열락으로 가득 찬 그림입니다. 색채의 조화가 놀라운 솜씨입니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마치 저 현장에 실제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그림에는 뛰어난 구성과 역동적인 붓 터치, 세련된 색채감각이 눈부시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사하고 더없이 아름다운 봄날의 풍경이 그림으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화면 상단에는 수도교가 아치를 그리며 수평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안쪽으로는 원경으로 자리한 풍경들이 드러나고 있고 다리 밑에서 화면 하단까지 철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평과 수직의 구도가 팽팽하게 긴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변으로는 나무와 풀, 집들이 흩어져 있고 좌측에는 양산을 들고 산책을 나온 몇몇의 여자들이 보입니다. 아마도 기차를 타고 이곳에 온 여행객들인 듯 합니다. 그리고 도시로 돌아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점경의 인물들은 수도교와 철로가 있는 풍경 사이에서 매우 활력적인 생기를 부여합니다. 더불어 눈부신 하늘, 하늘로 솟아오른 녹색의 나뭇잎, 주위의 풀들은 더없이 신선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시대의 본질을 풍경화에 은유적으로 담아내다
⌈아르쾨유의 수도교와 소 철로⌋는 다리와 철로가 교차하는 공간에 모여든 사람들이 있는 풍경이자, 광활한 자연에 문명의 힘들이 개입해 만든 근대의 풍경을 예리하게 조망하고 있습니다. 기요맹은 이렇게 자신의 시대를, 시대의 본질을 아름다운 풍경화 속에 은유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기요맹은 인상파 중에서 가장 충실한 화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온갖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그는, 한때 철도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철도가 있는 풍경을 자주 그렸습니다. 그도 역시 다른 인상주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했고, 살아 생전에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관되게 인상주의 화풍을 견지하면서 줄기차게 자연풍경을 탐구했고, 말년에는 그 화풍이 완숙해져서 거의 표현적인 색채로 충만한 야수주의에 가까운 그림을 구현하기도 합니다. 즉 기요맹은 인상주의에서 시작해 이를 충실히 견지하면서 끝까지 가본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9 GS칼텍스 캘린더 ‘세계 미술관 산책’ 칼럼 더보기
- [세계 미술관 산책 01월] 객관적 대상에서 주관적 인상으로,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 [세계 미술관 산책 02월] 병렬주의 화법으로 풍경의 본질을 묘사, 페르디난트 호들러 ‘쉬니케 플라테, 오베를랑의 풍경’
- [세계 미술관 산책 03월] 꽃무리를 길러낸 온화한 햇살을 오롯이 담아내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쥬느빌리에 노란 꽃무리’
- [세계 미술관 산책 04월] 점묘법을 통해 변모하는 세계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다, 조르주 쇠라 ‘그랑드 자트 섬의 센 강, 봄’
- [세계 미술관 산책 06월] 탄력적 붓질과 다채로운 색의 환희가 빚어낸 아름다움, 알프레드 시슬레 ‘빌뇌브 라 가렌느의 다리’
- [세계 미술관 산책 07월] 삶의 행복한 표정을 발랄하게 드러내 보이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 [세계 미술관 산책 08월] 마네와 모네의 끈끈한 동지애와 우정을 보여주다, 에두아르 마네 ‘선상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
- [세계 미술관 산책 09월] 우리가 겪는 가장 원초적인 시각의 경험,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기슭으로 난 길’
- [세계 미술관 산책 10월]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하고 건강한 원시적 풍경, 폴 고갱 ‘타히티의 산들’
- [세계 미술관 산책 11월] 낯선 도시의 따스한 봄볕이 잔인하다, 카미유 피사로 ‘대로, 시드넘’
- [세계 미술관 산책 12월] 별은 밤이 짙을수록 더욱 빛난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박영택 -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예술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미술사 전공, 뉴욕퀸스미술관 큐레이터연수, 금호미술관큐레이터, 2회 광주비엔날레특별전큐레이터, 아시아프전시총감독 등 역임.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예술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예술가로 산다는 것>,<현대미술의 지형도>,<애도하는 미술> 등 17권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