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관 산책 01월] 객관적 대상에서 주관적 인상으로,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GS칼텍스 -

세계 유명 미술관과 명화를 소개하는 2019 GS칼텍스 캘린더 1월 이야기입니다.

마르모탕 미술관, 최대 규모 모네 작품 컬렉션

예술과 낭만의 도시 프랑스 파리, 그곳에는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3대 미술관인 루브르 미술관과 연간 방문객 350만 명이 넘는 오르세 미술관을 비롯해 오랑주리 미술관, 그리고 마르모탕 미술관 등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최고의 미술관 하나는, 다름 아닌 불로뉴 숲 옆에 있는 작고 조용한 마르모탕 미술관(Musée Marmottan Monet)입니다. 이곳은 원래 발미 공작의 사냥을 위해 지어진 집이었는데, 1883년 미술가이자 예술품 수집가 폴 마르모탕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으면서 다양한 회화•오브제•조각품 등을 모아 1990년대 말 마르모탕 미술관으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마르모탕 미술관은 모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장소입니다. 바로 이곳에 서양미술사에서 매우 기념비적인 작품인 ⌈인상, 해돋이⌋, 빛의 변화를 잘 그려내며 천재성을 보였지만 모네로 하여금 수없이 악몽을 꾸게 했던 ⌈루앙 대성당⌋, 모네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수련⌋ 연작 시리즈 등 인상파 화가 모네의 많은 작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출⌋에서 ⌈지베르니의 수련⌋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규모로 모네 작품을 컬렉션한 미술관인 데다가, 그 외에도 모네와 아주 가까웠던 동시대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와 모네를 보다 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르누아르, 길버트 알렉산더 등이 그린 모네 초상화와 가족 그림들도 이곳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천성적인 반항아 기질을 타고나다

[세계 미술관 산책 01월] 객관적 대상에서 주관적 인상으로,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모네의 사진

1840년 11월 14일 파리 9번구 라피트가 45번지, 아돌프와 루이스 쥐스틴 모네 부부 사이에 둘째 아들, 클로드 오스카 모네(Claude Oscar Monet 1840~1926)가 태어났습니다. 사업가인 아버지와 가수였던 어머니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 모네는 특히 어머니에게 깊은 음악적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모네가 다섯 살 때 가족은 프랑스 서북 해안 노르망디의 항구도시 ‘르 아브르’로 이사했습니다. 그에게 교육과 규율은 천성적으로 몸에 맞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감옥 같은 곳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반항아였습니다.

캐리커처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모네는 풍자화를 전시하곤 했었는데, 덕분에 르 아브르에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즈음 운명적인 화가 외젠느 부댕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의 나이 당시 서른 살이었습니다. 부댕과 함께 야외로 나가 작업을 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피부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모네는 부와 명성을 추구했던 약간은 세속적인 화가로, 그림을 그리는 과거의 규칙을 무시하는 화가였습니다. 부댕은 모네에게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가르쳤고 모네는 이내 ‘빛이란 곧 채색’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청년 모네에게 있어 결정적인 경험은 알제리에서 경비병대에 자원입대한 사건입니다. 모네는 그 사건에 대해 자신의 비전을 풍부하게 만들었으며, 장래의 관심사가 싹튼 경험이었다고 말합니다.

지베르니, 모네의 영감의 원천

[세계 미술관 산책 01월] 객관적 대상에서 주관적 인상으로,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지베르니에 위치한 '모네 정원'의 모습

1883년 모네는 가족과 함께 파리에서 서북쪽으로 64km 가량 떨어진 센 강의 합류점에 위치한 지베르니에 정착하게 됩니다. 지베르니를 사랑한 모네는 “수면 여기저기 떠다니는 딸기처럼 수줍고, 하얀 꽃잎들로 둘러싸인 한 송이 백합의 마음과 같은 곳”이라고 지베르니를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전원이나 가옥은 어디에서도 다시 찾아볼 수 없다고 확신한다며 이곳에서 무려 250여 점이라는 엄청난 작품의 ⌈수련⌋ 연작을 완성했습니다.

지베르니는 그가 영감을 얻는 모든 것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지베르니에서 무려 43년을 머물며 인상주의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인상파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신랄한 혹평이 불멸의 명작으로

[세계 미술관 산책 01월] 객관적 대상에서 주관적 인상으로,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인상, 해돋이, 1872년, Oil on canvas, 48×63cm
1873년 모네는 노르망디로 돌아와 에트르타 바다와 르 아브르 항구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바로 우리가 보는 ⌈인상, 해돋이⌋란 제목을 붙인 불멸의 명작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1874년 전시되자마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랄한 혹평을 받았습니다.

미숙한 벽지조차도 이 해안 그림보다는 더 완성적일 것이다.
날로 먹는 장인정신의 자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것이 그림인가?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이렇게 모네를 힐난하며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풍경의 사실적 묘사보다는 순간의 느낌을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이유였습니다.

모네에게는 ‘지금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라는 순간의 인상이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빛’의 이미지를 그리는 작업을 계속해 나갑니다. 이러한 행보는 19세기 당시의 파리에게나, 모네 자신에게나 커다란 모험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상파 그룹이 드디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인상, 해돋이⌋는 태양이 가장 붉을 때인 해돋이 순간에 반사되고 있는 태양 빛을 화폭에 빠르게 담아낸 것입니다. 미국 텍사스 주립대의 도날드 올슨 천문학 교수는, 이 그림과 천문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당시 모네가 현지 시각으로 1872년 11월 13일 오전 7시 35분의 순간을 화폭에 옮겼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세계 미술관 산책 01월] 객관적 대상에서 주관적 인상으로,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르 아브르의 현재 모습
모네가 자신의 고향 르 아브르 항구에서 해돋이의 순간을 그린 이 그림은 서양미술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인상주의의 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림 작업할 의욕은 넘치지만 살롱에서 낙선하는 바람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습니다. 헐값에 팔려고 해도 미술상이며 고객들은 등을 돌립니다. 공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 예술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너무도 적은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라고 한탄했던 모네의 숨결이 이 작품에서 역설적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것 같습니다.

2019 GS칼텍스 캘린더 ‘세계 미술관 산책’ 칼럼 더보기

[세계 미술관 산책 01월] 객관적 대상에서 주관적 인상으로,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 profile 김종근

김종근 - 미술평론가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파리 1대학에서 현대미술사 D.E.A과정 졸업, 동대학 박사과정을 수료, 서울대 강사, 홍익대 예술학과 겸임교수. 아트앤 컬렉터 발행인, k아티스트 프로젝트 감독, 현재 한국작가상 운영위원장, 한국미협 평론 분과 위원장. 저서로는 <샤갈,내 영혼의 빛깔과 시> <달리,나는 세상의 배꼽 > <피카소> <빛나는 한국의 화가들> <마음속에 품은 현대미술> 등 평론집 다수가 있다.

GS칼텍스 뉴스레터 구독신청

에너지 산업 이슈, 석유 관련 기초 지식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