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관 산책 02월] 병렬주의 화법으로 풍경의 본질을 묘사, 페르디난트 호들러 ‘쉬니케 플라테, 오베를랑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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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명 미술관과 명화를 소개하는 2019 GS칼텍스 캘린더 2월 이야기입니다.

오르세 기차역을 리모델링한 파리의 3대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은 고대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을 다루는 루브르 박물관, 1914년 이후의 현대 미술을 다루는 퐁피두 센터와 더불어 파리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힙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 이후 근대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술관이기도 합니다. 미술관의 이름은 원래 건물의 이름인 오르세 역에서 그대로 따온 것인데요.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호화롭게 지은 오르세 역은 20세기 초까지 기차역과 호텔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역의 내부와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여 1986년 1월, 오르세 미술관이 개관하였습니다.

인상파 거장들의 대표 작품 컬렉션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주의 미술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1848년에서 1914년 사이에 제작된 인상파 그림들,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와 같은 작품들은 물론, 회화∙조각∙포스터∙가구∙악세사리∙사진∙그래픽아트∙공예품 등 19세기의 예술품들을 다양하게 소장 및 전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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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의 전경
특히 미술관에 들어가면 말로만 듣던 밀레의 ⌈이삭줍기⌋, ⌈만종⌋, 마네의 ⌈올랭피아⌋, ⌋풀밭 위의 점심⌋, ⌈피리부는 소년⌋, 앵그르의 ⌈샘⌋, 사실주의 작가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2층에는 아르누보관이 있으며 로댕의 ⌈지옥의 문⌋, ⌈발쟈크상⌋, 부르델의 ⌈활쏘는 헤라클레스⌋ 등 조각 작품들과 모네의 ⌈수련 연작⌋, 고갱의 ⌈타이티의 여인들⌋ 고흐의 ⌈화가의 방⌋, ⌈오벨리스크 교회⌋, ⌈자화상⌋, 세잔의 ⌈카드놀이를 하는 남자들⌋ 르누아르, 툴루즈 로트레크 등 교과서에서 보았던 인상파 거장들의 주옥 같은 작품들이 모두 전시되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그 가운데 좀 낯선 스위스 화가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가 바로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 1853~1918)입니다. 스위스 베른 출신의 상징주의 화가 호들러는 가난한 목수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8살 때 아버지와 동생들이 죽고, 어머니마저 결핵으로 사망하며 15살에 고아가 되면서 불우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양아버지로부터 장식 미술을 배웠고, 풍경화가 페르디난트 좀머 밑에서 기숙생활을 하며, 풍부한 빛과 색채로 가득 찬 광대한 자연을 그리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알프스 지역과 농촌 마을풍경을 그려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던 그의 나이 18세. 제네바로 가서 미술대학 교수인 바르세레미 멘을 만나 드로잉과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이 때 미켈란젤로, 뒤러, 쿠르베, 고야 등 유럽의 유명화가들을 알게 되었고 이들의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특히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은 죽음을 주제로 한 그의 많은 작품들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37살 되던 해 파리 여행을 하던 호들러는 폴 고갱과 조르주 쇠라의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후 그림은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인 루이 뒤쇼살을 만나면서 초기의 자연주의적 사실주의에서 심오한 영혼이 깃든 상징주의로 옮겨갔으며, 평평하고 선적이며 장식성을 띤 자신의 독창적인 양식으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극장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나는데, 그녀는 고데 다렐이란 이혼녀였습니다. 행복도 잠시, 암에 걸린 그녀를 호들러는 극진히 간호했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녀의 모습을 담은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들 속에서 그는 약동하는 듯 날카로운 윤곽선과 선명한 색채를 특징으로 시적이고 철학적인 표현주의적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후에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호들러는 그만의 ‘병렬주의’라는 양식을 발전시켰는데, 제의적인 포즈를 취한 인물들의 그룹을 길게 대칭적으로 나열한 것이 특징입니다.

독창적인 발상이 사물이 가진 고유한 특질에 대한 새로운 질서를 밝혀줄 것이다!

이렇게 말했던 호들러는 구름의 형성이나 안개 낀 모습 같은 자연의 형상들을 색면들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화풍을 구축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은 1910년작 ⌈슈토크호른 산맥과 툰 호수⌋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거의 추상화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그는 상징주의와 신비주의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인간의 내면적인 의미를 미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결성된 빈 분리파에 참여하게 됩니다.

병렬주의 화법으로 풍경의 본질을 표현

[세계 미술관 산책 02월] 병렬주의 화법으로 풍경의 본질을 묘사, 페르디난트 호들러 ‘쉬니케 플라테, 오베를랑의 풍경’ | gs calendar 2019 02 00
스위스 쉬니케 플라테, 오베를랑의 풍경, 1909년, Oil on canvas, 68×91cm
⌈쉬니케 플라테, 오베를랑의 풍경⌋은 호들러의 작품 중에서 가장 담백하고 투박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1909년에 그려 1912년에 뮌헨에서 발표한 풍경화입니다. 자연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고 산 풍경의 본질에 집중하여 그린 보기 드문 풍경입니다. 작품은 원근법보다는 평면적인 인상으로, 빈틈없이 꽉 찬 공간을 보여주는 파란 산이 화면 전체에 가득 차 있습니다. 앞쪽에 계단처럼 표현된 2층 구름은 땅과 자연스럽게 수평구도를 이루며 떠있습니다. 또한 산 뒤쪽에 놓인 구름은 산 능선과 비슷한 모습으로 산을 감싸 안고 전반적으로 수평구조를 이루어 마치 빙산의 일부분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병렬주의 화법은 그가 인물과 풍경을 그릴 때 종종 사용한 기법입니다. 그림을 그린 화가의 시선이나 자리한 위치도 다르지만 표현 기법의 명확한 차이가 층층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죠. 하단에는 다소 창백한 땅, 정상에는 강렬한 파란 색을 시작으로 아래쪽으로 차츰차츰 파란색 계단식의 그라데이션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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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니케 플라테 지역의 모습

호들러가 가진 상징주의에 대한 심취와 인상주의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저항심이 이 그림 속에서 오롯이 보입니다. 이 화풍은 일본의 ‘우끼요에‘에서 보여지는 후지산 풍경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알프스 지역과 농촌 마을풍경을 그려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던 경험이, 훗날 스위스의 파노라마적인 풍경을 잘 그릴 수 있었던 것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호들러는 자연의 모습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데 무엇보다 열중했습니다. 산의 부분적인 사실 묘사보다는 전체적인 풍경과 분위기에 더욱 집중하고 있습니다. 산과 구름의 조화를 구름으로 경계를 분할하면서 시선을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는 묘한 느낌을 풍경으로 처리하는 탁월한 표현력으로 크게 관심을 모은 작품입니다. 특히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 10년간 그린 풍경화들은 호들러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죠. 동시에 표현주의의 화가들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 그림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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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 미술평론가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파리 1대학에서 현대미술사 D.E.A과정 졸업, 동대학 박사과정을 수료, 서울대 강사, 홍익대 예술학과 겸임교수. 아트앤 컬렉터 발행인, k아티스트 프로젝트 감독, 현재 한국작가상 운영위원장, 한국미협 평론 분과 위원장. 저서로는 <샤갈,내 영혼의 빛깔과 시> <달리,나는 세상의 배꼽 > <피카소> <빛나는 한국의 화가들> <마음속에 품은 현대미술> 등 평론집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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