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소 전략의 배경과 의도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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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세계에는 매력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러’가 있는가 하면 의미 있는 숫자와 모델을 통해 계좌를 구축하는 ‘넘버크런처’도 있다. 뉴욕대 교수 어스워스 다모다란은 저서 ‘내러티브&넘버스’에서 내러티브와 넘버를 균형 있게 결합하여 판단할 수 있을 때 비즈니스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너무나 당연한 아이디어임에도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만큼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에너지 분야만큼 내러티브와 넘버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어려운 분야도 드물다. 신재생에너지에는 온갖 수식어가 붙는다. 또한 그것이 제시하는 스토리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친환경’, ‘그린’, ‘저탄소’ 등의 말은 엄격한 심사 없이 대중에게 어필한다. 새로운 에너지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할지 판단하려면 그 에너지가 가진 숫자에 주목해야 함에도 숫자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그럴만한 것이 새로운 에너지의 스토리는 지구를 구할 정도로 멋지지만, 에너지 관련 숫자들, 가령 물량, 열량, 비용 등은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내러티브와 넘버가 충돌하는 대표적 에너지가 바로 수소이다. 수소가 제공하는 스토리는 환상적이다.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물질이면서 물을 사용해 에너지를 만든다는 수소의 이야기는 미래 에너지가 전할 수 있는 최상의 스토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아무리 깨끗하고 청정한 스토리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존 에너지원 대비 적은 에너지를 생산한다면 매력도는 떨어진다. 사실 수소가 제시하는 숫자들은 아직 매력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수소를 폄하할 수는 없다. 오늘의 숫자로 미래의 가치를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민이 발생한다. 오늘날 수소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일본은 이 고민을 어떻게 다루고, 일본의 수소 전략에서 ‘넘버’를 뛰어넘는 정성적 판단과 의도는 무엇인지 추론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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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수소 전략에 대한 의문

Financial Times는 최근(2021.4월) 기사에서 일본이 미래 에너지 기술 2개 분야에 대담한 베팅을 했다고 표현했다.*[efn_note]※ Financial Times(2021).“Can Japan innovates its way out of a climate and energy crisis?”, Apr 06.[/efn_note] 그 중 하나가 수소이고, 다른 하나는 고체 전지이다. 이 중 수소는 일본 정부와 기업이 합동으로 글로벌 생산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고, 도요타, 혼다 등의 기업은 수소연료전지차, 연료전지 등에 역량을 집중하며 정부 정책에 호응하고 있다.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상용화하는데 두 가지 난제가 있다. 먼저 수소를 사용하는 인프라가 신설되어야 한다. 수소연료전지차가 보급되어야 하고, 수소충전소가 설치되어야 한다.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려면 수소 발전소도 지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수소를 운송할 때. 기존 가스 파이프라인 시설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기후특사 존 케리(John Kerry)는 파이프라인 시설을 갖춘 미국의 석유 메이저 기업이 그 장점을 활용하여 수소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러시아는 자국과 유럽을 잇는 노드스트림2 가스 파이프라인을 수소 운송에 활용할 것이라는 소식도 있었다.*[efn_note]※ OilPrice(2021).“Is the world’s most controversial pipeline about to pivot to hydrogen?”, Mar 22.[/efn_note] 같은 배경에서 국내 LNG 공급망을 갖춘 한국가스공사도 수소 사업 진출에 적극적이다.

그런데, 수소경제 실현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위와 같은 수소연료 전지차, 수소충전소와 같은 수소 사용과 관련한 인프라 구축이 아니다. 지금의 기술력으로도 수소차는 충분히 생산할 수 있고 기존 인프라가 수소 시설로 활용될 여지도 있다. 더 큰 난제는 수소를 어떻게 공급하느냐 하는 것이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이지만 지구상에서 단일 수소 원소 형태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주로 물, 천연가스, 암모니아와 같은 화합물로 발견된다. 따라서 순수한 수소를 추출해서 생산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사실 오늘날 주요 에너지인 천연가스, 석탄 등도 탄소와 수소가 결합된 탄화수소로써 수소 추출의 주요 재료가 되고 있다.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은 세 가지다. 현재 가장 흔한 방식은 ‘탄화수소 개질 공법’이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수전해 기법’이다. 그리고 석유화학 공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부생수소’가 있는데, 부생수소는 석유화학 산업에 종속된 생산량이라는 점에서 미래의 대량 생산 방법이 될 수 없다. 결국 ‘탄화수소 개질’과 ‘수전해’, 이 두 가지 방식에 미래의 수소 공급을 의존해야 한다. 이 중 탄화수소 개질은 말 그대로 천연가스, 석탄 등과 같은 탄화수소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탄화수소에서 추출한 수소를 추출수소라고도 하며, 원료에 따라 ‘그레이수소’(천연가스에서 추출) 또는 ‘브라운수소’(석탄에서 추출)라 한다. 그런데 탄화수소에서 수소를 추출할 때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생산과정에서 탄소를 포집하여 격리하는 기술인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를 결합하기도 한다. CCUS기술을 결합하여 탄소배출을 줄인 수소를 ‘블루수소’라 한다.

한편, 수전해 기법은 말 그대로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얻는 가장 이상적 방법이다. 그런데 전기분해 방식이므로 막대한 양의 전기가 필요하다. 이때 화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할 경우, 석탄 연소에 따른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따라서 석탄이 아닌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물을 분해하여 수소를 생산해야 한다. 이렇게 생산되어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없는 수소를 ‘그린수소’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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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생에너지를 수소 생산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풍부한 나라는 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수소 생산량에서 그린수소 비중은 전체 수소 생산량의 0.1% 수준이다. 위 표는 안타까운 숫자이다. 그리고 이 숫자는 당분간 크게 늘어나기 어렵다. 그린수소는 앞서 언급한 대로 재생에너지로 생산해야 하는데, 재생에너지 증대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19년 기준 18.7%로 세계 평균 26.6%에도 못 미친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일본 자동차 업체를 겨냥해 수소차의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경이로울 정도로 어리석다(mind-bogglingly stupid)’고 주장*[efn_note]※ 일론 머스크는 2014년 수소 연료전지(Fuel Cell)를 바보전지(Fool cell)라 부르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주장했다. 이에 Toyota는 대응 광고를 통해 자사 수소차 ‘Mirai’는 소의 배설물(Bull shit)에서 나오는 수소가스로 구동이 가동하다고 표현했다. Bull shit이란 단어는 욕설의 의미도 있다.[/efn_note]*[efn_note]※ 일론 머스크가 비판하기는 했지만, 수소연료전지차는 대형트럭 등 상용차 분야에서 전기차 대비 분명한 장점을 갖는다. 전기차는 차체가 무거워질수록 배터리의 무게, 부피, 충전시간이 증가해서 대형 화물차로 구현하기 어렵다. 반면, 수소차의 연료가 되는 수소는 가볍고 연료전지의 부피도 크지 않아 대형 상용차에서 유리하다.[/efn_note] 하는 것에도 그린수소의 생산량 ‘넘버’가 너무 작은 현실이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어떻게 수소를 확보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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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본의 치밀한 수소 확보 전략

일본 정부가 2017년 발표한 ‘수소기본전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이 해외에서 현지 자원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수소 생산에 필요한 자원과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하므로 해외에서 블루수소와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그것을 일본으로 들여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요 생산지로 호주, 사우디 등을 명시했다. 호주에서는 탄소배출이 많아서 에너지원으로써 이용이 불가한 갈탄에서 수소를 추출해 블루수소를 생산하고, 사우디에서는 풍부한 태양광을 활용해 그린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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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생산 수소를 일본에서 사용하려면 이를 운송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천연가스를 액화하여 LNG로 만들면 부피가 수백분의 1로 줄어 대량 운송이 가능하듯, 수소도 액화 시 부피가 1/800로 줄어 대량 운송이 가능하다. 천연가스는 –162°C에서 액화되는데, 수소는 그보다 낮은 –253°C에서 액화된다. 따라서 수소를 액화하고 수송하는 것은 특수선박을 이용해야 한다. 현재 수소 액화 운송은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상용화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 기술의 개발을 완료했다. 1981년 LNG 운송 선박을 세계 최초로 건조한 가와사키 중공업은 최근 세계 최초 액화수소 운반선 Suiso Frontier호 건조를 완료하고, 올해 중 호주에서 생산된 수소를 액화하여 일본 고베항으로 들여올 예정이다.*[efn_note]※ Harvard Business Review(2021),‘How Japan’s hydrogen innovation may fuel cleaner days ahead’. Mar 22.[/efn_note] 간단히 말해, 일본 수소 전략의 핵심은 HySTRA프로젝트*[efn_note]※ HySTRA 프로젝트 : 호주 빅토리아의 미이용 갈탄에서 수소를 추출·액화시켜 전용 선박을 이용하여, 고베시로 운송·저장·이용까지 가능한 액화 수소 공급망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일본의 HySTRA와 호주 HEA가 공동 시행 중인 프로젝트[/efn_note], SPERA프로젝트*[efn_note]※ SPERA 프로젝트 : SPERA 수소 기술을 사용하여 브루나이 LNG플랜트에서 발생하는 가스에서 추출한 수소를 톨루엔과 화학반응 시켜 MCH(일종의 액상 수소)형태로 일본 가와사키시로 운송하는 공급망 구축 실증사업[/efn_note] 등으로 구성된 국제 수소 생산망 구축과 수소 액화기술을 통해 해외에서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고 들여오는 것이다. 낮은 비용을 추구할 수 있는 배경에는 호주의 미(未)이용 갈탄을 이용해 블루수소를 만들고, 사우디의 태양광을 통해 그린수소 또는 암모니아를 제조해서 이를 운송하는 기술력이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 그린수소 생산에 필요한 재생에너지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고, 블루수소 생산에 필요한 자원도 부족하다. 장기간 해외 수소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양국 모두 수소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수소 전략의 관건이다. 일본의 이 부분에서 과감한 도전과 성과를 보여준다. 수소 생산에 유리한 자원을 가진 외국과 협력을 통해 생산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올해 중에는 성과물이 일본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이러한 과정에 다수 민간 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일본 경제산업성 예하 기구인 NEDO(신에너지 산업기술 종합개발기구)가 기술적·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3. 수소는 의미 있는 ‘넘버’를 제시하는가?

여전히 일본의 전략에 의문이 남는다. 일본이 정책적으로 기술과 자원을 투자해서 얻고자 하는 수소의 양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러티브에 맞는 넘버가 보이지 않는다. 2017년 발표된 일본 ‘수소·연료전지 전략 로드맵’은 2030년까지 고작 30만 톤의 수소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19년 발표된 한국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서 계획된 수소 공급량은 2030년 기준 194만 톤이다. 일본의 목표 수치는 한국의 계획보다 훨씬 적다.

연 30만톤의 소박한 목표를 세웠지만, 일본은 장기적으로 연 500만~1,000만 톤을 확보할 계획이다.*[efn_note]※ 한국무역협회(2020),‘일본, 수소를 2030년에 주요 연료로’, 12. 14.[/efn_note] 그런데, 앞서 언급한 일본 해외 수소 생산 프로젝트에서 생산 가능한 수소가 불과 수십만 톤 수준이다. 일본이 호주에서 추진하는 대표적 수소 사업 HySTRA 프로젝트가 목표하는 수소 생산량은 연 23만 톤 정도이다.*[efn_note]※ Upstream (2021). “’Major milestone’ : Australia close to shipping world’s first cargo of liquefied hydrogen to Japan”Mar. 12.[/efn_note] 이 상황에서 수소 생산량을 500~1,000만 톤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것은 해외 프로젝트가 지금의 수십 배 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최첨단 액화수소 운반선도 수십 척은 더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연 1,000만 톤 수소 공급이 가능해진다 해도 최종 에너지 수요의 일부만 담당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은 1,000만 톤의 수소가 전량 발전용으로만 쓰인다 해도 일본 전력 수요의 10% 정도(설비 용량 기준)만 담당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efn_note]※ 한국무역협회(2020),‘일본, 수소를 2030년에 주요 연료로’, 12. 14.[/efn_note]

한편, 한국 정부의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서는 2040년 약 526만 톤의 수소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8년 공급량 13만 톤의 약 40배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생산한 에너지는 2040년 국내 최종소비 에너지 중 약 5%만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efn_note]※ 정부 관계부처(2019),‘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p.66[/efn_note] 탄소경제를 수소경제로 전환하기에는 부족한 숫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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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본이 수소에 전력하는 속셈

수소 생산과 사용은 추출, 탄소 제거, 액화 운송, 그리고 연료전지 등 여러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일본은 이 기술들을 확보하는 것에 가장 열심이고 수소 추출과 액화 기술은 가장 앞서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생산되는 수소 에너지의 양이 2030년까지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테슬라, 폭스바겐 등은 수소차 사업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efn_note]※ Business insider(2021),‘VM, Mercedes & Co. wave goodbye to their hydrogen dreams – this goes again H2 drive system’, Mar 17.[/efn_note]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수소를 확대하는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분석이 있다.

첫째는 ‘잃어버린 20년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라는 것이다.*[efn_note]※ 에너지경제(2015), ‘수소전지 팔 곳이 있어야 투자. 정부 뚝심 있게 추진하길’, 6. 1.
– 본문에 인용한 상기 기사는 오래된 기사이지만, 위 기사의 시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Financial times도 2021년 4월 6일 기사(Can Japan innovate its way out of a climate and energy crisis)에서 비슷한 시각을 제시했다. 이 기사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일본 산업계의 깊은 자기성찰(soul-searching about whether the country lost its edge)을 불러왔고, 그린에너지 기술이 일본이 과거에 누렸던 혁신국가(innovator)의 명성을 되찾을 희망과 기회를 주고 있다고 설명한다.[/efn_note] 한국 에너지기술평가원 연료전지 프로듀서 이해원은 일본이 ‘수소경제 도래에 대해 확신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일본이 정책적으로 수소 확대를 추구하는 것은 산업계의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불황을 겪었고, 지금도 반도체, AI, 5G 등 미래 주요 산업 분야에서 한국, 미국, 중국에 밀리고 있다. 따라서 미래 에너지 기술인 수소와 고체 전지 분야에서만큼은 반드시 선두를 점하겠다는 의식이 있다. 즉, 에너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산업계 생존을 위해서 수소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에너지 환경에서 보면 조금 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개발할 여건도 열악하다. 게다가 원자력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의 트라우마가 남아있어 확대하기 어렵다. 수소가 아닌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를 대안으로 이야기하지만, 이와 관련하여서는 빌 게이츠가 제시한 ‘넘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에서 일본이 수소에 전력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2021년 저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그는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 풍력과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의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엄청나게 많은 땅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생각을 조금 바꾼다. 그는 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할 때 태양광은 석탄 화력의‘5~50배’의 땅이 필요하고, 풍력은 태양광의‘10배’의 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재생에너지가 필요로 하는 땅의 넘버 때문에 재생에너지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 그러면서 전기를 모두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전기 사용 자체를 일부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efn_note]※ 빌 게이츠(2021),‘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김영사, pp.138~139[/efn_note]

광대한 국토를 가진 미국에서 이러한 생각을 한다면, 일본처럼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 재생에너지의 역할은 더욱 제한될 것이다. 일본에서 재생에너지는 당분간 석유, 가스만큼의 에너지를 공급해줄 수 없다. 또한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도 없다. 따라서 새로운 에너지원이 더 필요하다. 그것이 조금 어렵고 비싸더라도 가릴 처지가 아니다. 결국 일본이 2030년 목표하는 30만 톤의 수소는 투자 대비 큰 숫자는 아니지만, 일본의 여건에서는 매력적일 수 있다.

5. 일본 수소 전략의 시사점

한국 정부도 2019년‘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2040년까지 수소연료전지차는 620만대 생산, 수소충전소는 1,200개를 구축할 계획이다. 아래 표 수소연료 전지차와 충전소 숫자만 본다면 한국은 일본보다 더 과감하다. 일본의 수소연료 전지차 공급 계획은 2030년까지 80만 대, 수소충전소는 900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수소차, 수소충전소 등 수소 수요를 창출하는데 더 중점을 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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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모두 자국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탄화수소 개질 수소는 탄화수소가 필요하고, 수전해 방식의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양국은 수소 시대에도 에너지원의 수입을 반복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일본의 수소 전략은 일방적으로 에너지를 수입하던 과거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다양한 해외 생산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단순한 수입국의 입장에 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수소 기술을 선도적으로 축적해 장기적으로 수소 공급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수소 전략에서 2030년까지 확보하겠다고 제시된 연 30만 톤이라는 작은 숫자에서 단순 수입으로 수소 물량을 채우지는 않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무리하게 수소경제를 확대하면 수소 생산기반을 갖춘 외국만 배를 불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efn_note]※ 주간동아(2021),‘현대차, SK, 포스코, 43조 수소동맹… 현재 방식으론 비환경적, 비경제적’, 3. 12.[/efn_note] 굳이 비싼 수소를 수입하기보다 그 재원을 재생에너지나 CCUS에 투자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 발전은 그린수소를 생산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그러하다.

또 하나 일본의 전략에서 눈여겨볼 것은 CCUS의 활용 가치이다. 수소의 궁극적 지향점은 재생에너지에서 온 전기로 물을 분해하여 만드는 그린수소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기반이 취약한 나라에서 그린수소는 현실적 방향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18.7%로 세계 평균 26.6%에도 못 미친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일본보다도 낮은 6.5%이다(2019년 기준). 한국에게도 그린수소는 먼 미래이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모두 당분간 수소 전략의 중심은 그린수소가 아닌 블루수소가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수소 프로젝트들도 대부분 블루수소 기반이다. 그런데 블루수소의 핵심 기술 중 하나는 CCUS이다. CCUS가 없는 상태에서 추출수소는 환경적인 면에서 화석연료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다. 이 점은 앞으로 블루수소를 만들기 위한 이산화탄소 처리 기술이 수소 전략의 성패를 좌우할 요인임을 암시한다. 일본이 갈탄이라는 낮은 품질의 석탄에서 수소를 추출하겠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CCUS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전략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정부 기관과 민간기업의 협력으로 수소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경제산업성 예하의 NEDO(신에너지 산업기술 종합개발기구)*[efn_note]※ NEDO(New Energy and industrial technology Development Organization) : 일본 에너지 환경 분야와 산업 기술을 담당하는 독립행정법인이다. 중장기 기술개발, 기술 기반 스타트업 육성 등을 수행하고 있으며, 2020년 예산 규모는 14.4억달러(약 1조 6천억원)이다.[/efn_note]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수소 분야는 R&D의 필요성이 매우 크다. 반면 시장의 규모는 작다. 따라서 민간이 사업과 연구개발을 동시에 추진하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NEDO는 연구개발과 경제적 지원을 통해 해외 수소 프로젝트를 뒷받침하고 있다. 호주 갈탄에서 블루수소를 추출하는 HySTRA 프로젝트도 NEDO의 지원과 호주 정부의 보조금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수소 사업은 생산과 소비 모두 개척 단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책적, 기술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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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가며

개인적으로 수소의 가장 큰 특징은 ‘생산의 종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수소의 3개 생산 방식은 모두 특정 자원에 종속되어 있다. 탄화수소 개질은 탄화수소에, 수전해는 재생에너지에, 그리고 부생수소는 석유화학 산업에 종속되어 있다. 따라서 수소 생산량을 지배하는 독립 요인들, 즉 탄화수소 생산량과 재생에너지 발전량, 그리고 석유화학 산업 규모의 증가가 선행되어야 수소 생산도 증가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수소가 가까운 미래에 주요 에너지가 되기보다는, 수소 생산을 지배하는 에너지원들과 함께 에너지 믹스를 이루는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지금의 석탄, 석유, 가스를 대체할 단 하나의 에너지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특정 에너지원 하나로 탄소중립을 이룰 수도 없다.

따라서 미래 어느 시점까지는 다양한 재생에너지와 수소, 원자력과 화석연료가 혼재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어떤 에너지원이 가장 먼저 비중을 확대할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한국과 일본은 다양한 에너지원을 확보할 필요성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는 것이다. 석유와 가스도 거의 나지 않고, 국토 면적과 지형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사용 여건도 그리 유리하지 않다. 따라서 수소가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수소연료 전지는 대형 화물차 에너지원으로 전기차 배터리 대비 분명한 장점을 가질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기업은 수소연료 전지차 분야에서 앞서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는 더해진다.

문제는 수소가 제시하는 생산량 등의 숫자가 냉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단 수소뿐만 아니라 초기 단계에 있는 모든 신재생에너지의 숫자는 당혹스러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숫자가 주는 당혹감과의 싸움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에너지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내러티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고, 인재와 자본은 그 분야로 몰리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30~50년 남아있다던 석유 매장량 넘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고갈이 유예되었던 것은 석유 분야에 거대 자본과 인재가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석유기업 엑손모빌은 시가 총액 1위를 장기간 유지하였고, 수많은 사람이 열정을 다해 석유에 도전했다. 요컨대 석유가 부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인류는 석유의 고갈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변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욕심과 돈의 방향이다. 따라서 특정 산업의 미래를 판단할 때 그 분야로 인재와 자본이 몰리고 있는지 봐야 하는데, 지금의 내러티브는 화석연료가 아닌 새로운 에너지를 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어떠한 혁신과 진보를 이루어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과학과 기술은 항상 놀라운 성과물을 내놨다는 점에서 신재생에너지를 지금의 숫자로 판단할 수 없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의 시작점에서 필요한 마음가짐은 기후변화 대처라는 인류의 과제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에너지원의 스토리에 들뜨지 않고, 잠정의 숫자에 실망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소에서 유의할 점은 수소 생산 방식의 특성상 그 생산을 지배하는 요인들, 즉 재생에너지와 CCUS 등과 함께 성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수소의 안타까웠던 숫자, ‘그린수소의 생산 비중’도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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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 과장 - 한국석유공사 에너지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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