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우리나라 무역 수지를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럴만도 한 것이 에너지 수입 비중 92%에 달할 정도로 대외 의존도가 높다. 우리나라를 산유국 대열에 서게 했던 동해가스전 수명이 다하면서 석유, 천연가스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제 가격이 오르고 도입 물량이 늘어나는 만큼 국부 유출이 많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고유가 시절 마다 무역 수지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원유는 더 많이 수입하는 것이 우리나라 무역 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산업 구조 때문이다. 반전의 비결을 소개한다.
1. 1월 국가 수입액 중 27%가 에너지
지난 1월, 우리나라 전체 수입액은 590억 달러, 수출은 463억 달러로 집계됐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은 성적표 때문에 127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특성상 무역수지 적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심각하다. 사우디나 카타르처럼 원유, 천연가스가 넘쳐 에너지 수출로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자체가 글로벌 경제 생활권이 될 만큼의 인구와 국토 면적, 산업 기반을 보유한 중국과도 달라 자원은 빈약하고 국토는 좁고 인구는 제한적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무역수지 적자를 평가할 때 산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제시하는 원인 중 하나로 ‘고유가’가 빠지지 않는다. 실제 1월 무역수지 적자와 관련해 산업부 이창양 장관은 ‘고금리와 고물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우리나라 수출이 감소했다’고 진단했다. 그 한편으로는 ‘대규모 에너지 수입이 지속돼 무역적자가 확대됐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실제로 1월 한 달 동안 우리나라는 원유와 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를 수입하면서 총 158억 달러를 지불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수입액 590억 달러 중 26.8%를 에너지 구입에 지출한 셈이다. 이중 원유 도입에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했는데 1월 수입액만 69억 4,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어 가스 수입액이 67억 7,000만 달러, 석탄도 20억 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 유가 상승으로 수입 물량 대비 수입액 증가폭 더 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영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은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다. 2022년 총 수출액은 6,839억 달러를 기록하며 2021년 이후 2년 연속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물가와 달러 가치, 유가 등의 3고(高) 현상 등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되어 수출 여건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전했다고 자평했다. 수출 증가율이 일본·독일·이탈리아 등 주요 선진국을 뛰어넘었고 수출액 기준 글로벌 순위도 전년보다 한 단계 상승해 중국, 미국, 독일, 네덜란드, 일본에 이어 세계 6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반도체·자동차 등 우리나라 주력 수출 품목이 선전했고 이차전지로 대표되는 신산업, 시스템반도체·전기차·농수산식품 같은 새로운 유망 품목의 해외 판매가 고르게 늘어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무역수지는 적자를 기록했다. 수입액이 7,312억 달러를 기록하며 수출액보다 473억 달러 더 많았는데 가장 큰 원인으로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지목됐다.
지난해 원유·가스·석탄 글로벌 가격이 크게 올랐고 그 결과 도입 물량 변동에 비해 전체 수입 비용이 급증했다. 실제로 작년에 도입된 원유는 10억3,170만 배럴로 전년 대비 7.4% 증가하는데 그쳤는데 전체 수입 금액은 57.9%가 늘어난 1,058억 달러를 기록했다. 가스와 석탄도 각각 568억 달러와 281억 달러가 수입되며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운 비용을 지불했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 적자가 확대되면 국가 경제는 침체되고 부채가 늘어나며 국민 세금 부담이 커지는 연쇄적인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에서 무역 흑자로 전환하려면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리거나 아니면 대표적인 수입 품목인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모두 쉽지 않다.
3. 원유로 생산된 경유, 수출 마진 59%
우리나라를 산유국 대열에 진입시킨 동해가스전에서는 비록 소량이지만 초경질원유가 추출되면서 납사, 등유, 경유 같은 석유제품 생산 원료를 자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스전 수명이 다하면서 초경질원유 생산도 멈춰, 현재는 정제 원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원유는 휘발유, 경유, 항공유 같은 석유제품 생산 원료이니 내수 시장에서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고 산업·자동차 효율을 높이는 등의 노력으로 수입을 줄이면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수출 전략 측면에서 원유 수입을 줄이면 국가 무역 수지에 해롭다. 원유 수입을 늘려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지난 1월,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41억 3,000만 달러에 달했다. 특히, 석유 수출액은 23개월 연속 플러스 성장을 기록 중인데 그 배경에 대해 산업부는 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석유 수요 회복세가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인 경유가 배럴당 110 달러 수준의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점 등을 꼽았다. 국가 주력 수출 품목 중에서는 60억 달러를 기록한 반도체, 49억 8,300만 달러를 판매한 자동차에 이어 석유가 41억 3,000만 달러를 달성하며 세 번째로 높은 기여도를 달성했다. 1월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인 462억 7,000만 달러 중 석유가 차지한 비중이 8.9%에 달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4. 2022년 국가 수출액 100원 중 9원이 석유
정유사들은 지난해에도 국가 수출 최선봉에서 괄목할 활약을 펼쳤고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 석유 수출액은 630억 달러를 달성하며 1,292만 달러를 내다 판 반도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출 실적을 올렸다. 또한 국가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보다도 89억 달러어치를 더 많이 해외에 판매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인 6,839억 달러와 비교하면 석유가 9.2%의 비중을 차지했다. 국가 수출액 100원 중 9원 정도가 석유였던 셈이다.
지난해 석유 수출액이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국제유가 상승 효과를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주력 수입 유종인 두바이유 가격은 2021년 배럴당 69.41 달러이던 것이 작년에는 39% 올라 평균 96.41 달러에 거래됐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서 석유제품 가격이 동반 상승했으니 정유사 수출액도 늘게 됐다. 산업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입한 원유는 10억 3,170만 배럴, 금액으로는 1,058만 달러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630억 달러어치의 석유를 수출했으니 원료인 원유 수입액 중 59.5%가 정유사 정제 과정을 거쳐 석유로 가공 수출되며 다시 회수됐다.
물량 기준으로는 4억 9,707만 배럴의 석유제품이 수출됐다는 석유공사 통계이니 도입 원유 물량 중 약 48.2%가 정제 과정을 거쳐 해외에 판매된 셈이다.
수출 과정에서의 부가가치도 탁월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석유제품 평균 수출단가는 배럴당 121.1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원유 도입 평균 단가와 비교하면 정유사들은 원유 1배럴을 수입해 석유제품으로 정제, 수출하면서 18.5 달러의 마진을 확보했다.
2021년 차액이 8.7 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수출 채산성은 두 배 이상 개선됐다. 내수보다 더 많은 원유를 도입하면 수입액이 늘어 무역 수지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지만 부가가치를 높인 석유제품으로 다시 수출하면 궁극에는 무역 수지 개선으로 연결되니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가공무역(加工貿易)’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바로 ‘정제 산업’이다.
5. 5대양 6대륙 곳곳에 대한민국 상표 석유가 공급
지난해 정유사들이 석유제품을 수출한 국가는 총 64개국에 달했다. 전년의 58개국 대비 수출 네트워크가 6개국 늘었다. 대륙별로는 이웃한 일본·중국 등의 아시아는 물론이고 우리나라가 원유 상당량을 수입하는 사우디·카타르 등 중동 아시아, 미국·캐나다 등의 북미, 브라질·멕시코·에콰도르·푸에르토리코 등의 남미, 이집트·케냐·남아공·나이지리아 등의 아프리카, 호주·뉴질랜드가 속한 오세아니아 등에 수출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으로 지난해 심각한 석유 수급난을 겪은 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의 유럽 국가에도 대한민국 브랜드 석유제품이 공급됐다. 게다가 괌, 솔로몬제도, 팔라우, 피지 같은 태평양 섬나라에도 석유가 수출됐으니 지구본에 표시된 5대양 6대륙 곳곳에서 우리나라 정유사가 생산한 석유제품이 사용되고 있다.
석유 한 방울 생산되지 않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 60여 개국에 석유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배경은 세계적 수준의 정제 능력이 꼽힌다. 글로벌 메이저인 BP가 발간한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유사 ‘정제 설비 능력(Oil Refining Capacity)’은 하루 357만 2,000배럴로 세계 5위에 해당된다. 하루 1,814만 배럴의 정제 능력을 갖춘 미국이 세계 1위에 해당되고 1,669만 배럴의 중국, 673만 배럴의 러시아, 501만 배럴을 보유한 인도 뒤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 규모가 큰 일본의 328만 배럴보다도 우리나라 정제설비 능력이 더 크다.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특히 주목받는 대목은 수출 전략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제품의 절반 가깝게 수출할 수 있는 정제 능력을 갖춰 최근처럼 글로벌 석유 수급 불안이 가중될 때 정제설비를 활용한 수출 채산성 극대화가 가능한 구조다. ‘지상유전(地上油田)’으로 불리는 고도화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한 것도 고유가 상황에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고도화설비’는 값싼 중질유를 분해해 부가가치가 높은 등·경유 등의 경질 석유제품으로 전환하는 장치다.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고도화 비율은 30~40%에 달해 10~20% 수준에 그치는 다른 정제 대국들에 비해 높은 경제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에너지 수입이 늘수록 국가 무역 수지에 해롭다는 분석은 원유에는 단연코 해당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규모의 경제를 갖췄고 꾸준한 고도화설비 투자로 채산성을 개선해온 한국 정유사들의 노력은 자원 빈국임에도 더 많은 원유를 수입하는 것이 오히려 무역수지를 개선 시 하는 반전을 이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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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 에너지 플랫폼 뉴스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