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110불 → 22불 → 84불 → 마이너스 37불 → 80불… 그리고 2024년 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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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불 → 22불 → 84불 → 마이너스 37불 → 80불... 그리고 2024년 유가는?
원유는 특정 국가에 집중 매장되어 있지만 지구의 모든 국가가 소비한다. 이 때문에 산유국 카르텔이 생산·공급을 지배하며 유가를 부양하려는 시도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유가가 항상 꼭대기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니며 극심한 가격 변동성에 내몰리는 경우가 흔하다. 팬데믹 중에는 마이너스 가격 즉 판매자가 웃돈을 얹어 원유를 넘기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100불을 넘긴 초고유가 시황이 식어 생산원가 이하로 급락하는 일이 연출된다. 산유국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로 카르텔 균열이 발생하고 경기 변동이 세계 석유 수요에 영향을 주며 기술의 진보로 채굴 비용이 높아 방치된 유전에서 상업적인 원유 생산이 가능해지는 상황이 유가를 결정짓기도 한다. 산유국 밀집 지대인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유가의 상시적인 변수가 된다. 2010년 이후 현재까지의 유가 변동 배경 그리고 올해 전망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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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반, 중동 산유국 리스크에 3년 내내 100불대 유가

기본적으로 세계 석유 시장은 공급과 수요의 균형점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경제 원칙이 작동된다. 석유 공급·소비국 사이의 역학 관계 즉 유가를 높이려는 산유국과 하향 안정을 희망하는 소비국 사이의 수싸움도 유가 결정의 배경이 된다. 이 같은 현상은 2010년대 들어 수 차례 연출된 롤러코스터 유가 시황을 통해 확인되는데 때로는 공급 측 요인이 또 다른 상황에서는 수요 측 이슈가 유가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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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통 원유 생산 기술이 진화한 2010년대 들어 미국이 본격적으로 셰일오일 생산을 확대하면서 벌어진 치킨게임은 유가를 뒤흔든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불이 넘는 초고유가 시절이 상당 기간 지속됐다. 실제로 우리나라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두바이유는 1배럴에 2011년 평균 105.98불에 거래됐고 2012년 109.03불, 2013년 105.25불을 기록했다.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중동 자유화 바람이 불었고 이란 핵 개발과 관련한 국제 사회 제재가 강화됐으며 시리아, 예멘 내전 등 산유국 리스크가 커졌는데 한편에서는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서 석유 수요가 증가한 것이 유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당시는 석유 공급 부족 요인이 시장을 주도했다면 미국 셰일오일 공급이 늘면서 시장은 공급 과잉 요인이 지배하는 시대로 전환된다. 2010년 하루 평균 82만 배럴에 불과했던 미국 셰일 원유 생산량은 이후 급증하며 2012년 225만 b/d, 2014년에는 407만 배럴, 2015년 480만 배럴까지 늘었다. 이로 인해 유가가 하락하고 시장 점유율이 추락하자 OPEC 특히 사우디 중심으로 생산량을 확대하며 맞불 전략을 구사했는데 오히려 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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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유가 시절 끝낸 미국 셰일오일

미국의 셰일오일 유전에서 석유가 넘쳐나는 데도 사우디는 오히려 생산량을 확대해 2013년 하루 988만 배럴에서 2015년 1,042만 배럴, 2016년에는 1.069만 배럴까지 늘렸다. 셰일오일 생산 비용이 전통 유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에 착안한 사우디는 석유 공급을 늘려 손익분기점 아래로 유가를 낮추면 셰일오일 싹을 자를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사우디가 오히려 백기를 들었다. 당시의 드라마틱한 상황은 유가로 확인된다.
두바이유 기준으로 2014년 6월 23일 111.23불까지 상승했던 현물 가격은 사우디까지 가세해 생산량을 늘리는 치킨게임 와중에 하락세로 전환됐고 2016년 1월 21일에는 22.83불까지 떨어졌다. 넘쳐나는 석유 공급에 국제유가는 불과 1년 반 사이 80% 가까이 추락했는데 중동 산유국 타격이 특히 심각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넘쳐나는 오일머니를 주체하지 못했던 중동 산유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는데 석유 판매 수입이 급감하면서 2015년 7월과 8월 사우디 정부는 재정 적자 충당을 위해 각각 150억 리얄(당시 기준 약 40억$)과 200억 리얄(약 53억$)의 국채를 발행했다.
사우디 정부 국채 발행은 2007년 이후 처음일 정도로 당시 재정 결핍의 압박이 심각했다. 같은 해 쿠웨이트 정부는 “유가 하락으로 정부 세입이 4월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절반가량 감소했다”며 위기 상황을 호소했다. 반면 유가 전쟁의 단초를 제공했던 미국은 오히려 셰일오일 생산량을 늘렸고 석유 수출국으로 변모한다. 현재 우리나라 수입 원유 중 미국산이 사우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것도 셰일오일 생산으로 미국 정부가 공격적인 석유 수출에 나선 결과다. 미국은 사우디를 뛰어 넘어 세계 최대 원유 생산 국가에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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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1,777만 배럴로 같은 기간 세계 생산량 중 18.9%를 차지했다. 반면 2위 생산국인 사우디는 1,213만 배럴로 미국 생산량에 크게 모자란다. 미국 원유 생산량은 2010년의 하루 평균 755만 배럴보다 10여 년 사이 두 배 넘게 늘었으니 셰일오일 개발이 세계 원유 수급과 유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 짐작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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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에 석유 수요 급감, 전대미문의 마이너스 유가

중동 산유국 중심의 석유수출국기구 OPEC이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을 끌어들여 카르텔 확장판인 OPEC+를 결성하게 된 계기가 미국 셰일오일 생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중심의 북미 비전통유전 개발이 확대되고 원유 공급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사우디 주도의 OPEC은 비OPEC 산유국 중 최대 생산량을 확보한 러시아 등과 힘을 합친 OPEC+를 2016년 결성했다.
OPEC+ 결성 과정에는 OPEC 산유국인 사우디와 비OPEC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의 감산 관련 갈등이 유가 폭락으로 이어진 학습 효과가 작용했다. 미국 셰일오일 공급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유가가 하락하자 사우디는 러시아에 감산 협조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고 그 결과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와 러시아가 생산량을 늘리는 출혈 경쟁에 돌입하면서 2016년 유가 폭락으로 이어진 뼈아픈 경험이 있다. 다만 OPEC+ 결성 이후인 2017년 하루 170만 배럴의 감산에 합의하면서 공급량 조절을 통한 유가 부양에 성공했고 2018년 10월 4일 두바이유 가격은 84.44불까지 상승했다. 2016년 1월 21일 두바이유 가격이 22.83불에 마감된 것을 감안하면 산유국 카르텔의 생산량 조절 효과로 약 2년 반 사이에 국제유가는 4배가량 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한 2020년에는 유가가 통제 불능 상태까지 하락했다. 전 세계적인 이동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석유 수요와 정제시설 가동률이 급락한 일부 국가에서는 원유 저장시설이 포화되며 유조선이 바다에 정박해 대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2020년 4월 20일 WTI 가격이 마이너스(-) 37.63불을 기록하는 사상 초유의 일도 발생했다.
1970년대의 오일쇼크 시절을 제외하면 세계 석유 시장이 2010년대처럼 드라마틱하게 움직였던 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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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 자발적 감산 확대에도 유가 하락, 그 의미는

지난해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평균 82불에 마감됐다. 팬데믹에서 벗어나 세계 석유 수요가 회복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급 불안이 가중됐던 2022년 평균인 96불보다 14불 이상 낮았다. 100불을 훌쩍 넘었던 2012년 그리고 팬데믹으로 세계 석유 수요가 급감했던 2020년의 평균 40불대 유가와 비교하면 그 중간쯤에 걸쳤다.
지난해 세계 석유 시장을 관통한 대표적인 흐름은 OPEC+의 일관된 감산 그리고 산유국 대표 국가들의 자발적인 추가 감산을 꼽을 수 있다. 2022년 10월 OPEC+ 19개 회원국은 생산량 쿼터를 조정하며 하루 200만 배럴의 감산에 돌입했고 여러 차례 기한을 연장하는 과정이 지속됐다. 탈석유와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한 사우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균형 재정 유가를 방어하는데 집중하며 스스로의 생산·수출 물량을 하루 130만 배럴 줄이는 절박한 희생도 불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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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30일 열린 제36차 OPEC 회의에서도 감산 연장에 합의했고 특히 OPEC+ 회원국들의 자발적인 추가 감산 규모가 더욱 확대돼 올해부터는 하루 220만 배럴로 늘었다. OPEC+의 공식 감산 쿼터와는 별개로 사우디가 하루 10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을 유지하고 러시아는 수출 감축 물량을 50만 b/d로 늘렸고 이라크·UAE 등 6개 산유국이 69만 6,000 b/d만큼의 생산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국가 재정에서 석유 판매 수입이 절대적인 산유국 카르텔이 감산에 합의한 것은 ‘유가 부양’이라는 반대급부를 기대한다는 명확한 메시지였는데 당시 선언 이후 유가는 오히려 6거래일 연속 하락했고 이후로도 약보합 기조를 보였다.

이를 두고 주요 기관들은 OPEC+ 감산 규모가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산유국 카르텔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공급 과잉’으로 판단했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 침체로 석유 수요 위축이 점쳐진 것이 유가 하락으로 이어졌는데 이 같은 현상이 올해도 지속될 것인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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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가 지난해 수준 될 듯, OPEC+ 감산·세계 경기가 관건

올해 유가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 EIA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월간 단기 에너지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국제유가 전망치를 낮췄다. EIA는 세계 경기, 석유 수급, 지정학적 환경 등을 감안해 매월 단기에너지전망(STEO, Short-Term Energy Outlook) 리포트를 발간하는데 그 핵심 중 하나가 유가 전망이다.

EIA는 지난해 11월 발간한 리포트에서 올해 브렌트 평균 가격을 배럴당 93.24불로 전망했다. 그런데 12월 전망에서는 이보다 10.7불이나 낮춰 82.57불로 수정했다. EIA 분석대로라면 올해 브렌트 가격은 지난해 평균인 82불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유가 전망치를 하향 수정한 배경에 대해 EIA는 글로벌 석유 수요 둔화 전망을 꼽았다. 국제에너지기구 IEA도 올해 석유 수요 증가가 정체될 것으로 전망했다. IEA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석유시장보고서(Oil Market Report)에서 세계 주요 경제국의 GDP 성장률이 추세를 밑돌고 있어 올해 세계 석유 수요 증가율이 지난해 대비 절반 수준인 110만 b/d에 그치며 둔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역시 올해 유가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예측했다. 지난달 열린 ‘2023 석유컨퍼런스’에서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사우디·러시아 등 OPEC+의 유가 부양 의지와 미국·중국 등 글로벌 주요국 경기 침체에 따른 석유 수요 둔화 우려가 충돌하는 상황을 전제로 올해 두바이유 평균 가격을 배럴당 83불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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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올해 유가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형성하게 되는데 다만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63.5불과 비교하면 여전히 30%가량 높다. 미국, 중국 등 세계 주요국의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2분기 이후 OPEC+ 감산 합의가 와해되는 저유가 시나리오에서는 기준 시나리오보다 8.7불 낮은 74.3불로 예측됐다. 내년 1분기 자발적 감산 확대 등을 예고한 OPEC+이 2분기 이후에도 추가 감산에 나서고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에 이란이나 후티 반군 등이 개입하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전제된 고유가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89불까지 상승할 수 있다.
반면 산유국 카르텔인 OPEC은 정반대 상황을 예측하고 있다. OPEC은 지난해 12월 발간한 월간 석유시장보고서(Monthly Oil Market Report)에서 올해 석유 시황이 유가 상승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점쳤다. 중국 경제 반등과 미국 경기 개선 등 세계 경제가 낙관적인 흐름을 보이며 세계 석유 수요 증가분이 비OPEC 공급 증가량을 초과하고 OPEC 감산은 지속되면서 타이트한 석유 수급이 유지될 것으로 OPEC은 판단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기 호조세가 지속되고 부동산 리스크, 디플레이션 우려 등에 직면했던 중국 정부가 올해 들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시행할 경우 OPEC 기대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OPEC+ 카르텔이 와해되고 산유국들이 잉여 생산능력을 활용해 공급을 늘린다면 국제유가가 지난해의 절반 수준까지 폭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유가 향방은 세계 경제의 회복 여부 그리고 OPEC+ 카르텔 행보가 좌우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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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 에너지플랫폼뉴스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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