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의 시대, 국내 정유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
국내 정유산업은 정유제품 수출과 화학제품의 수출까지 포함하면 반도체보다도 큰 수출 효자 산업이다. 이렇게 중요한 정유산업이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아젠다를 앞에 두고 미래를 위한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자원부국이었던 호주, 이제는 국내 석유제품 최대 수입국으로
일반 시민들은 주유소 가격을 보면서 항상 주유소 가격은 비싸기만 하다고 단순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최근 출장 다녀 온 호주에서는 휘발유와 경유가 우리나라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하게 생산된다고 알려진 자원부국 호주에서 우리나라 보다 가격이 더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현지에서 확인해보니, 호주에서 기존에 정제업을 하던 8개의 정유시설 중 6개가 문을 닫고, 현재는 2개 시설만이 남아 있어서 국내 생산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결과, 호주는 우리 석유제품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이자 작년 한해에도 49%나 수입 물량을 확대한 매우 고마운 국가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호주는 다시 정유시설을 유치해 생산량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막대한 자금과 기술력 부족을 단기간에 메우기가 쉬운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호주의 사례를 통해 얻은 교훈은 에너지 안보와 가격 안정의 차원에서, 정유시설을 국내에 두고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제시설이 부족한 미국, 가솔린 및 디젤 가격의 지속적 인상
미국도 가장 최근 정유시설을 건설한 것은 1977년이 마지막이다. 미국 내 수요는 여전하지만 공급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현재 캘리포니아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7$에 육박하는 등 역대 최고점을 향해 가고 있다.
심지어 재생에너지 환경이 좋은 캘리포니아에서도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를 줄이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석유에 대한 수요가 여전한 이유는 석유가 액체라는 특성으로 인해서 어떠한 용기에 담아도 되고, 어떠한 이동수단으로도 이송이 용이한 점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석유는 여전히 매력적인 에너지원임이 틀림없다.
탄소중립 추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석유 제품의 수요
탄소중립이 추진되고는 있지만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는 그만큼 빠르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석유 생산의 정점(Peak Oil)을 얘기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에너지의 약 80%는 화석연료에서 생산되고 있고, 그 중 절반이 석유이다. 그리고 전 세계 에너지의 50%는 열에너지로 사용되기 때문에 전기로 전환하기 어려운 난감축(Hard-to-Abate) 산업의 경우 열에너지원을 저렴한 다른 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지구온난화, 결국 방법과 재원이 문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를 줄여야 하지만 그만큼 전환은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는 실정이다. 당위를 얘기하지만 비용의 문제와 재원 마련의 문제는 그만큼 현실적인 문제이다.
최근 영국이 내연기관차 완전 퇴출을 203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미룬 이유도 석유자원에 대한 공급 부족 때문이다. 수요에 비해 부족한 공급량으로 가격은 뛸 것이고, 전기차로의 전환은 생각보다 더디고 비쌀 것이다. 그리고 재생에너지로 전기차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그만큼의 전력생산시설 투자와 천문학적인 계통연결비용과 간헐성 보강비용을 투자해야 하지만, 그에 따른 비용상승 또한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를 넘어서 지구열대화(global boiling)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여 기후위기가 심각함을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정유산업 역시 조금이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석유기업인 Shell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2050년까지 net-zero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상황과 수준 등을 감안할 때,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불가능할 전망이어서 특단의 기술적 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결국 방법과 재원이 문제인 것이다.
CCS의 도입과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는 필수적으로 정유산업이 개발하고 활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적 요건이다. CCS 개발을 위해서는 경제성을 담보하고 안전하게 저장할 장소를 찾아 재배출이 되지 않도록 하는 현실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즉,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하고 기술 개발도 시급하다. 미국은 IRA의 45Q 세금 혜택을 통하여 톤당 85$의 현금을 기업에 지원한다. 추가로 DAC(Direct Air Capture)에는 180$를 지원한다.
이렇듯 미국과 주요 선진국은 당분간 화석연료를 쓸 수밖에 없는 실정에서 CCS를 가장 큰 대안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국내 정유사도 모두 마찬가지로 열심히 CCS 기술개발과 저장위치 탐색과 실증을 추진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바이오 원료를 상용하여 탄소배출을 줄이고,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합성원료 제조 기술 등으로 자원재순환을 통한 탄소저감에도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또한 암모니아와 수소를 활용한 e-fuel 등도 적극 활용하는 등, 기존의 내연기관을 사용하면서도 경제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글로벌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국내 정유사들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유시설 고도화와 저탄소 친환경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신규시설에도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조금이라도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산업구조 체질개선도 동시에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정유산업의 미래를 위한 대규모 지원과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EU에서는 이미 SAF(Sustainable Aviation Fuel)를 강제하고 있고, 그로 인해 친환경 바이오 항공유를 공급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협력도 진행하고 있다. 기존 석유제품 생산이나 활용보다는 매우 기술적으로 어렵고 비용도 비싸지만 친환경이 대세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몸부림이자 미래 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McKinsey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이러한 지속 가능 원료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연간 평균 185조 원의 생산비가 든다는 주장도 있다. 즉 모든 문제는 돈이고 기술이다. 국내 정유사의 수출기여도와 부가가치 창출 기여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술개발에 정부도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 또한, 정유산업을 국내에 존립할 수 있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금융적, 세제적 지원을 당장 실시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으로 새롭게 재편될 수 있도록 정유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과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 본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GS칼텍스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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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종 - 단국대학교 경영경제대학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2011년 단국대 경제학과에 부임하였으며, 주요 연구분야는 거시경제, 에너지자원, R&D지식산업의 경제적 분석이다. 현재 한국자원경제학회 부회장, 에너지경제연구 편집위원장, 전력거래소 비용실무협의회 위원, 장기천연가스 수요예측분과 위원 및 가스기기 보상평가 위원 활동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