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칼럼] 거품 논란 생긴 수소 경제…옥석구분이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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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최고 광산 재벌 앤드류 포레스트가 최근 자신의 철광석 기업 포테스큐를 수소 발전소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사실상 중단했다. 수소 관련 일자리 700여 명(포테스큐 인력의 4.5%)을 감축하고, 2030년 1500만 톤의 수소를 생산한다는 계획도 철회했다. 비슷한 시기 유럽 감사원은 유럽연합(EU)의 “2030년까지 188억 유로를 들여 연간 1,000만 톤을 생산하는 수소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수소 경제 목표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때까지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다.

꿈의 자원이라 기대되던 수소…현실은 과장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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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에너지 전환을 위한 ‘꿈의 자원’이라 불리던 수소가 찬밥 신세가 되고 있다. 3년 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 넷제로 시나리오’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연간 7,000만 톤(70 mtpa)의 수소 생산 설비가 추가돼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 연간 수소 생산 용량이 9,400만 톤 내외였던 것에 비해 75%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이는 2050년이면 연간 8억 톤에 달하는 저탄소 수소 수요가 있을 것이란 수소위원회의 예측과 맞물려 폭발력을 발휘했다.

이후 전 세계가 수소 시장의 성장성에 들썩였다. 특히 미국 정부가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해 수소 생태계에도 막대한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약속하면서 장밋빛 수소 꿈에 불을 지폈다. 내로라하는 에너지 기업들이 앞다퉈 수소 투자 확대를 발표했고, 전해조 설비를 제조하는 스타트업들은 수주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최근 수소의 역할론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수소가 탄소중립(넷제로)에서 차지할 역할은 연간 3억 5,000만 톤 도 채 안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초 8억 톤의 수소 시장이 열릴 것이란 최대 전망치를 절반 이하로 깎았다. S&P 글로벌은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2024년은 수소 경제의 성패가 갈리는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는데, 7개월여가 흐른 지금 ‘과장 광고된 수소(hyped hydrogen)’를 우려하는 전망이 더 많아지고 있다.


여전히 비싼 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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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지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발표된 수소 프로젝트는 2030년까지 총 4,500만 톤의 용량을 공급한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최종 투자 결정(FID)을 받은 용량은 300만 톤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한 수소 제조 설비들이 대부분이다. 블룸버그NEF는 최근 “2030년까지 연간 수소 공급량이 1,600만 톤에 그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IEA가 예측한 연간 수소 생산량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현재 수소 시장은 연간 1억 톤 내외 생산되는 그레이 수소(석유 가스 추출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되는 수소)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친환경 전기로 전해조 설비를 가동해 만드는 그린수소 생산량은 연간 10만 톤(0.1mtpa) 미만이다. 수소 기업들이 2년 전에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던 생산량(50만 톤)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현재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린수소 프로젝트는 전부 시범 설비거나 소규모 상용화에만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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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친환경 수소 생산 비용은 ㎏당 4.50달러에서 6.50달러 수준이다. 당초 IRA 등의 지원을 토대로 3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 정도 경제성은 요원하다는 평가다. 전해조 설비 설치 비용, 인건비, 금융비용 모든 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수소의 에너지 함량과 생산 비용 등을 바탕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균등화 수소 생산 원가)을 계산하면 1MWh당 200달러로 추산된다.

그레이 수소는 탄소 배출량에 대한 탄소 가격을 포함해도 1MWh당 86달러에 불과하다. 즉 기존 수소 고객사들이 친환경 수소로 전환하기 위해 추가로 지불하는 비용인 ‘그린수소 프리미엄’이 114달러를 웃돈다는 뜻이다. 생산만 해도 이 정도인데, 보관과 운송 비용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비싸진다.

전기화가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뤄지는 점은 수소에 대한 수요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사용량의 25%를 차지하는 산업용 열 공정의 경우 저열 공정에서는 산업용 히트펌프가, 철강 유리 제조 등 고열 공정에서는 열 배터리가 수소를 대체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글로벌 자본이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는 데 우선 투입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에르 분쉬 벨기에 중앙은행 총재는 “1차적으로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만드는 친환경 전력에 대한 수요가 안정적으로 충족되는 게 선행돼야 한다”며 “그린수소는 에너지 전환이 끝날 (2050년) 무렵에 유용해질 것”이라고 했다.


청정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수소 사용처 선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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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경제로의 진행이 예상보다 더디지만, 여전히 긍정적이라는 징후도 확인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산업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존 그레이 수소의 42%를 그린수소(친환경 전기로 물을 분해해 만드는 수소)로 대체해야 한다는 신재생에너지 지침을 지난해 상반기 통과시켰다. 보조금이라는 당근 외에 채찍도 꺼내 든 것이다.

최근 유럽 수소 은행의 첫 입찰에서 선정된 프로젝트의 보조금 수준이 ㎏당 0.5유로 미만으로 매우 낮았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의 마틴 쿠프만 수소 책임자는 “이는 탄소 감축을 하지 못했을 때 받을 수 있는 페널티를 피하기 위한 구매 수요가 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수소의 역할론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요나탄 바르트 독일 에너지독립위원회 대변인은 “수소가 만능열쇠가 되길 바라다보면 지금 당장 수소를 사용할 수 있는 분야가 정작 탈탄소를 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수소 자원을 적절한 곳부터 분배해야 확실한 성장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수소가 청정 에너지원으로 활용되기 위해선 운송 경로를 최대한 단축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생산지와 긴밀하게 연계된 사용처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나친 장밋빛 전망은 수소 프로젝트의 옥석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어 수소경제 도래를 늦출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소 활용 효과를 극대화하는 사용처를 찾는 역량이 ‘수소경제 2.0’ 시대를 좌우할 것이라는 의미다.

글 – 김리안 한국경제 기자

※ 본 콘텐츠는 한국경제 김리안 기자의 기고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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