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묶인 전기·가스 인상 요인, 몰아서 ‘빚’ 갚을 차례

GS칼텍스 -

세계 주요국 정부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고, 우리 정부도 한국은행이 잇따라 기준 금리를 인상하는 등 물가 잡기에 몰두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지수 동향에 따르면 지난 7월 지수 상승률은 6.3%를 기록하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높은 오름폭을 보였다. 가장 최근인 9월 물가상승률도 5.6%를 기록하며 고공 행진 중이다. 물가 급등 원인 중 하나는 에너지 도입 가격 영향이 컸다. 그런데도 정부는 10월을 기해 소비자물가지수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은 전기, 가스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한국전력공사는 반영을 미뤄왔던 기준연료비 잔여 인상분까지 포함해 전기요금을 인상했고, 가스공사는 주택용 가스 요금을 15.9%나 올렸다. 물가 급등 시점에 굳이 전기, 가스 요금 인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들여다봤다.

콩보다 낮은 두부값, 정상인가?

‘콩을 가공해 두부를 생산하고 있다. 수입 콩값이 올라갈 때 그만큼 두부값을 올리지 않았더니 이제는 두부가 콩 보다 더 싸다’

느닷없는 콩 그리고 두부 타령을 하는 이유는 최근의 전기값 인상과 관련이 있다. 2018년 7월, 전력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김종갑 당시 사장이 페이스북에 남긴 말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김종갑 사장은 ‘완성품 두부 가격이 원재료 콩보다 가격이 낮다’는 표현을 빌려 전기를 만들어내는 연료 가격보다 전기 가격이 더 낮게 팔리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발전 연료인 천연가스, 석탄 같은 에너지는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도입 가격이 상승하면 전력 공급 가격에 반영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정부 규제로 생산 원가보다 낮게 전기요금이 책정되는 일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전기가 공공재(公共財)인가’ 여부는 경제학 측면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국민이 소비하고 산업의 필수 동력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전기 가격을 물가 관리 핵심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생산 원가가 무시된 가격 결정 구조가 마냥 용인될 수는 없으니, 김종갑 한전 사장은 ‘콩 보다 낮은 두부 가격’을 비유해 발전에 투입되는 에너지보다 싸게 공급되는 가격 전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도시가스, 발전·산업용 연료로 사용되는 천연가스를 도입, 도매하는 공기업 가스공사는 수 조원에 달하는 ‘미수금(未收金)’을 안고 산다. 전기와 마찬가지로 물가 이슈 때문에 천연가스 도입 가격 상승 요인을 내수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 정부는 그 차이를 ‘미수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기나 가스요금 변동 요인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 한전이나 가스공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거나 자금 유동성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전기 생산 원가나 천연가스 도입 가격 변동 요인을 내수 공급에 반영하도록 ‘연료비(원료비) 연동제’라는 제도적 기반을 도입했지만 ‘물가 안정’ 앞에서는 비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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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특히 전기 요금은 최근 수년 사이 치열한 정쟁의 소재가 되고 있다. 탈원전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이전 정부에서 경제적인 원전 가동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발전에 투자를 늘렸는데, 그 과정의 전기요금 인상분을 가격에 전가하지 않아 한전이 천문학적 적자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그중 하나다.

다른 편에서는 이전 정부의 실제 원전 이용률이 감소하지 않았고 최근의 국제 정세 변화로 발전 연료 가격이 급등한 것이 전기요금 상승의 실질적인 배경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같은 논쟁은 정쟁의 영역으로 남겨 놓더라도 분명한 것은 한전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졌고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역대 최고 수준까지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100원짜리 전기 팔면 44원 손해

한전은 10월 1일을 기해 전기요금을 상당폭 올렸다. 주택용은 kWh당 2.5원이 올라 월 평균 사용량이 307kWh인 4인 가구의 월 부담 요금은 760원이 늘었다. 10월부터 적용되는 2022년 기준연료비 잔여 인상분인 4.9원까지 포함하면 월 평균 2,270원이 증가한다. 여기에 부가가치세와 전기요금에 3.7%가 부과되는 전력기반기금을 포함하면 주택용 전기 소비자들이 실제 부담하는 요금 인상은 더 커지게 된다.

전기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산업체 등에 적용되는 요금은 더 올라 공급전압에 따라 kWh 당 최대 11.7원이 인상 적용된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 배경에 대해 한전은 ‘연료가격 폭등에 대한 가격신호 제공과 효율적 에너지사용 유도를 위해 누적된 연료비 인상요인 등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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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에너지 산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전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언급해왔다. 산업부 이창양 장관은 10월 전기요금 인상에 앞선 지난 9월 30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에너지 요금의 가격기능을 정상화해 자발적인 수요 효율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당시 이창양 장관의 발언에는 발전 원가 상승 요인을 공급 가격에 반영해 한전의 천문학적 손실을 줄여야 한다는 절박함과 더불어, 원가 변동에 충실한 요금 책정으로 전기를 포함한 에너지 소비가 효율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메시지가 동시에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전력 공기업 한전의 위기는 매출 현황에서 확인된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 31조9,92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매출원가는 44조8,778억원에 달했다. 한전 입장에서 매출원가는 전기 구입 원가를 의미하는데 매출은 이보다 크게 낮으니 전기를 손해 보며 팔았던 셈이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 한전은 14조3,032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44.7%의 영업손실율을 기록했다. 100원짜리 전기를 팔면서 44원을 손해보는 장사를 한 것으로 지극히 비정상적인 경영 판단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기요금 조정 못하면 올해 한전 적자 30조 넘을 수도

전력공기업으로 전력 송배전과 판매를 담당하는 한전의 수익 구조는 간단하다.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발전 5개 자회사, 민간 발전 기업, 구역 전기사업자들이 생산한 전기를 전력거래소를 통해 구매해 일반 고객에게 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과정에서 발전 구입 단가와 판매 단가의 차이가 한전의 수익 구조를 좌우한다. 김종갑 전 사장의 표현처럼 원료인 콩보다 완제품인 두부를 더 싸게 팔면 한전은 적자를 보게 되고 그 반대 경우라면 이윤을 남길 수 있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게 콩은 더 싸게 구입하고 두부는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한전은 정부가 2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한 시장형 공기업이니 시장 경제 논리만 좆을 수가 없다.

전기요금은 연료비 변동 요인 등을 반영한 한전의 가격 조정안을 전기위원회가 심의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은 정부가 결정한다. 전기 가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정부는 요금 조정을 통해 전반적인 소비자 물가 등을 관리하면서 콩보다 두부 가격이 낮은 비정상적인 가격 체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한전이 마냥 흡수할 수는 없다. 석탄, 천연가스 국제 가격은 오르는데 이들 에너지를 원료로 발전한 전기 가격을 동결하면서 올해 상반기 한전의 천문학적인 적자 이유가 됐기 때문이다. 10월 전기요금 개편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한전의 올해 적자가 30조 원에 달했을 것이라는 전망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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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가스 도입 원가 반영 못해 미수금만 5조 넘어

천연가스를 독점적으로 수입, 도매하는 공기업 가스공사 수익 구조도 한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스공사가 해외에서 도입한 천연가스를 국내 시장에서 얼마에 판매하느냐가 가스공사 수익을 결정한다. 그런데 물가 관리 차원에서 천연가스 도입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내수 시장에서 판매하면 가스공사는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가스공사 채희봉 사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도시가스요금은 가스공사의 공공성 기능을 통해 그동안 효과적으로 억제되어 왔는데, 주택용 도시가스가 원가에 못 미치는 가격으로 공급되고 있어 미수금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채희봉 사장은 또 ‘2021년 3월과 2022년 3월 사이의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네덜란드는 3.2배, 독일은 3.5배, 영국은 2.8배, EU 27개국의 경우 1.8배 급등했는데 가스공사가 도매로 공급하고 있는 우리나라 주택용 요금은 거의 변동없이 4% 정도 극히 미미한 수준만 인상했다’는 구체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기업 미수금은 부실로 인식돼 손상 처리하며 털어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그 규모가 너무 크고 성격도 다르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5조1,000억원에 달했다. 천연가스가 급등하기 이전인 지난해 1/4분기 가스공사 매출액이 4조5,563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분기 매출보다 많은 금액이 미수금으로 쌓여 있는 셈이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미수금에 묶이면 가스공사의 자금 유동성이 위협받게 되고 국제시장에서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도입하는 대금 조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가스공사를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의 사채 발행 상향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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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전은 자본금과 적립금의 2배, 가스공사는 4배 한도 이내에서 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 공기업이 발전 또는 가스 도입 원가를 공급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최악의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겠다며 사채 발행 한도를 최소 5배 이상으로 상향하는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연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사채 발행 늘린 유동성 해소는 미봉책일 뿐

올해 상반기 14조 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한 한전은 유동성 확대를 위해 지난 8월까지 19조8,000억 원의 사채를 발행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회사채를 발행해 일시적으로 자금 유동성이 확대되더라도 전기나 천연가스 판매 가격이 정상화하지 못하면 자금 고갈은 시간문제라는 점이다. 물가 상승 부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10월부터 전기와 가스 가격 상향에 나선 이유이다.

정부는 그동안 쌓인 한전 손실과 가스공사 미수금을 해소하기 위해 10월에 이어 전기와 가스 가격을 추가적으로 인상하겠다는 계획도 밝히고 있다. 산업부가 최근 공개한 에너지 위기 대응 대책에 따르면 10월 단행한 전기요금 조정은 그동안의 발전 연료비 증가분 중 ‘일부’를 현재의 물가 상황과 서민 생활을 고려해 적정 수준으로 조정한 것에 불과하다. 내년부터는 원가 요인을 반영해 전기요금의 단계적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것이 산업부 계획이다.

천연가스 도입 비용 상승을 내수에 반영하지 못해 쌓인 인상 요인 역시 2023년부터 정산단가에 단계적으로 반영해 역대 최대 수준인 미수금을 점진적으로 회수하겠다는 점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정부 설명을 요약하면 전기, 가스 원가가 상승하는 동안에도 소비자들은 값싸게 소비했고 이제는 그 빚을 갚아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민간 기업이라면 대규모 부실로 도산하거나 상장 폐지될 수 있는데도 한전이나 가스공사가 여전히 경영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은 이들 공기업의 경영 공시에서 확인된다.

한전은 실적 공시 자료에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정부의 전기요금 규제로 전기요금 변동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발전 원가 상승요인이 전기 판매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음을 주주들에게 알리는 메시지인데, 구체적으로는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전기요금이 1% 감소할 때 법인세 비용 차감 전 2,994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는 구체적인 숫자도 명시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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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공사 역시 기업 공시를 통해 ‘도입 원가와 가스 요금 수입 간의 차이인 정산 손익을 정부 승인을 거쳐 차기연도 요금 산정에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는 전기, 가스 요금 인상 요인을 당장은 반영하지 않았을 뿐이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 쌓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 이후 에너지 요금 정상화를 공언하고 있으니 그동안 쌓인 ‘빚’을 소비자들이 정산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소비 절약과 효율 향상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정부 고위 인사들이 ‘에너지 요금을 정상화시켜 가격 기능이 작동하도록 하도록 시장에 시그널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전기요금을 1% 인상하면 전력소비는 0.3%에 해당되는 연간 약 1,925GWh가 줄어든다. 전기, 가스 공급 가격 인상 요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를 위한다며 제때 반영하지 않으면 그 빚이 쌓여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를 절약해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가격 시그널이 전달되지 않아 소비자들은 과소비의 우를 범하게 된다.

산업부는 2021년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한 이후 발전 비용이 급격하게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총 6번의 요금 조정 기회 중 4번을 동결해 한전 적자가 더 커졌다고 밝혔다. 에너지 가격 변동 요인이 요금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사이 소비자들은 에너지를 과소비했고 그렇게 쌓인 빚을 몰아서 갚게 생겼다.

‘에너지 요금의 가격 기능을 정상화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이제라도 어김없이 지켜져야 할 이유를 정부 그리고 소비자 모두 고통스럽게 체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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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 에너지플랫폼뉴스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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